인간은 끊임없이 오르려 한다. 더 높은 곳을 향한 욕망은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지만, 때로는 자신을 지치게 하는 무게가 되기도 한다. 이선영 시인의 「마주친 승강기」는 이러한 인간의 삶을 일상적인 사물인 승강기에 빗대어 담담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 [코리안투데이] 이선영 시인의 「마주친 승강기」 © 장시백 기자 |
“오랜 시간 / 삶의 무게를 견디어 온 다리 / 소리 없는 통증이 찾아왔다”
시의 첫머리에는 오랜 세월을 견뎌 온 한 인간의 고단함이 배어 있다. 여기서 다리는 육체의 일부이면서 삶의 무게를 지탱해 온 존재의 상징이다. 수많은 계단과 가파른 내리막길은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굴곡진 인생의 여정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할 시어는 단연 ‘승강기’다.
승강기는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동시에,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쉬게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더 높은 곳을 향해 이동하는 수단이면서 역설적으로 스스로 걷기를 멈추고 자신의 무게를 맡기는 장소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중의성이 작품의 의미를 확장한다.
인간은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는 잠시 멈추어 쉴 곳을 갈망한다. 올라가려는 욕망과 쉬고 싶은 마음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인간의 내면에 공존하는 두 가지 본능이다.
시인은 승강기라는 평범한 사물을 통해 이 상반된 욕망을 자연스럽게 하나의 이미지로 결합한다.
“무거운 발걸음을 승강기에 기대어 / 잠시 숨을 고르면 돌아오는 평온함”
이 구절에서 승강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선다.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고 있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잠시 걸음을 멈춘다. 상승을 위한 공간이 휴식의 공간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삶을 살아가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때로는 멈추어야 하고, 더 높이 오르기 위해 잠시 자신의 무게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나 승강기가 영원한 안식처는 아니다. 문이 열리면 다시 자신의 발로 걸어야 한다. 시인은 이러한 삶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위로의 손길이 끝나고 / 다시 시작 되는 아픔 / 그럼에도 불구하고 / 나는 덜 외롭다”
나는 이 작품에서 특히 마지막 구절인 ‘나는 덜 외롭다’에 오래 머물렀다.
시인은 ‘행복하다’거나 ‘이제 외롭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덜 외롭다’고 말할 뿐이다.
이 간단명료한 표현에는 오히려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고통은 여전히 남아 있고, 가야 할 길도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나마 자신의 무게를 덜어 준 무엇인가를 만났기에 이전과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덜’이라는 한 글자가 인상적이다. 외로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전과 똑같은 외로움도 아니다. 시인은 그 미세한 감정의 변화를 짧은 한마디로 포착한다.
그리고 더 이상의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다.
그 침묵 속에 독자가 머물 자리가 생긴다. 누군가는 가족을 떠올릴 것이고, 누군가는 사랑했던 사람이나 힘겨운 순간에 건네받았던 작은 친절을 기억할 것이다. 승강기가 누구에게 어떤 위로였는지는 독자의 삶에 따라 달라진다.
좋은 시는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다. 때로는 덜 말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나는 덜 외롭다’는 짧은 종결이 작품에 여운을 남기는 이유다.
「마주친 승강기」는 오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을 하나의 사물에 담아내고, 마지막에는 외로움의 작은 변화만을 남긴다.
삶의 무게가 가벼워진 것은 아니다. 오르막도 끝나지 않았다. 다만 잠시 기댈 곳이 있었다는 사실이 다시 걸어갈 힘이 된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며 바라는 위로란 이처럼 크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아픔을 없애 주는 기적이 아니라, 조금 덜 외롭게 해 주는 누군가의 존재.
그 작은 차이를 독자의 마음속에 남겨 놓는 것, 그것이 이 시가 지닌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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