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날 새벽 5시, 아직 어둑한 베이징 천단공원 입구에 서 있었습니다. 취재를 위해 일부러 일찍 나섰는데도, 이미 공원 안에는 수백 명의 노인이 모여 있었습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느릿한 음악에 맞춰, 그들은 마치 한 사람처럼 팔을 둥글게 그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광경 앞에서 한참을 그냥 서 있었습니다. 제가 서울 어느 파크골프장에서 봤던 왁자지껄한 아침 풍경과는 완전히 다른, 고요하고 정연한 아침이었습니다.

수련이 끝난 뒤 저는 용기를 내어 한 어르신께 말을 걸었습니다. 그분은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태극권은 단순한 체조가 아니라 ‘기(氣)의 순환, 음양(陰陽)의 조화, 정신(精神)의 수양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삶의 방식이라고요. 제가 책에서 인용했던 종난산 원사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태극권은 움직이는 명상이다. 느림 속에서 몸의 균형을 찾고, 고요함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이것이 바로 양생의 본질이다.” 그 말을 들으며 저는 제가 지금까지 ‘노인 운동’을 너무 좁게 생각해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숫자로 확인해보면 그 규모가 더 실감납니다. 2025년 중국 국가체육총국 조사에 따르면 중국 내 태극권 수련 인구는 7,858만 명, 전체 인구의 5.58%에 이릅니다. 이 중 도시 수련자가 63.2%를 차지하지만, 제가 더 놀랐던 숫자는 따로 있었습니다. 35세 미만 젊은 층이 27.5%에 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300년 전통의 이 운동이 노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세대를 잇는 문화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202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에는 전 세계 150개국 이상, 약 3억 명이 함께 수련하고 있다고 하니, 저는 그 저변의 넓이에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저는 얼마 뒤 경기도의 한 파크골프장을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일흔셋 어르신은 몇 해 전까지 게이트볼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팀 안에서 서열 다툼이 있고, 구장도 낡아서요. 골프채 잡으니 훨씬 홀가분하더라고요.” 실제로 게이트볼은 2001년부터 2015년 사이 전국에 1,436곳의 구장이 조성되며 전성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상당수가 방치되거나 다른 용도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반면 파크골프 등록 회원은 2020년 4만 5천 명에서 2025년 25만 명으로 5년 만에 5.5배 폭증했습니다. 같은 노년층인데도, 중국은 수천 년 전통 위에 머물고 한국은 5년 만에 종목 자체를 바꿔버린 셈입니다.
저는 이 두 풍경을 나란히 놓고서야 비로소 그 차이의 의미를 이해했습니다. 중국 노인에게 양생은 병원에 가기 전의 모든 건강 행위를 아우르는 포괄적 철학 체계이고, 한국 노인에게는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곧 양생이었습니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두 나라 모두 노인들이 결코 멈춰 있지 않다는 것, 그것만은 분명했습니다. 한국 노인이 가장 많이 참여하는 운동이 걷기(41.9%), 보디빌딩(14.6%), 등산(12.1%) 순이라는 조사 결과도, 정적인 수양보다 활동적이고 사교적인 움직임을 선호하는 우리의 정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 취재를 하면서 저는 게이트볼의 쇠퇴가 단순히 운동 효과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을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시설 노후화와 위계 문화, 그리고 ‘올드하다’는 이미지가 겹치며 새로운 세대의 발길을 돌려세운 것이었습니다. 반면 태극권은 젊은 세대의 유입률이 오히려 늘고 있으니, 이는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니라 브랜딩과 이미지 관리의 성패를 함께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한국이 앞으로 만들어갈 노인 체육 정책 역시, 건강 효과만이 아니라 노인들이 스스로 ‘올드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는 방식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취재 중 저는 책에 미처 다 담지 못했던 한 장면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톈진의 한 공원에서 만난 광장무 동호회 회장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광장무는 춤이 아니라 소식을 나누는 자리예요. 여기 안 나오면 동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몰라요.” 저는 그 말을 들으며 태극권과 광장무가 단지 몸을 단련하는 운동이 아니라, 노인들이 세상과 연결되는 창구라는 걸 다시 확인했습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광장무 참여 인구만 1억 명을 넘어선다는 통계도 있었으니, 새벽 공원의 고요함과 저녁 광장의 활기가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온 두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책의 결도 이 차이를 뒷받침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은 2025년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서며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공식 진입했고, 정부는 노인일자리와 생활체육 예산을 앞다투어 늘리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전민건신계획’을 통해 공공 체육시설을 대대적으로 확충해왔고, 그 결과가 지금의 새벽 공원 풍경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고령 인구가 중국은 3억 명을, 한국은 1,000만 명을 넘어선 지금, 저는 이 규모의 차이보다 ‘누가 먼저 준비했는가’의 차이가 앞으로의 노년을 가른다고 느꼈습니다. 여러분이 사는 동네에는, 노인들이 매일 아침 별다른 이유 없이도 모일 수 있는 자리가 있으신가요.
저는 이 원고를 쓰면서 독자 여러분께 묻고 싶어졌습니다. 우리 동네 어르신들은 지금 무엇으로 몸을 움직이고 계신가요. 그리고 그 운동을 계속하시게 만드는 것은 건강에 대한 확신일까요, 아니면 함께하는 사람들일까요. 저는 이 질문에 정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묻고 다니고 싶습니다. 그것이 결국 우리가 어떻게 늙어갈지를 미리 그려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그들의 하루」 제13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새벽 천단공원의 태극권 수련 현장과 한국 파크골프장의 풍경, 그리고 그 사이에서 제가 만난 노인들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위아북 상세 페이지(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2-kr/)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코리안투데이(The Korean 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