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난청 어린이 토리가 보청기를 ‘소리요정 루루’라 부르며 군산의 골목으로 들어선다. 《토리와 루루의 군산 시간여행》은 이 발상 하나로 그림책의 결을 바꿔놓는다.
장애 이해 교육을 다루는 어린이 그림책은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외에서 꾸준히 늘고 있다. 초기작들이 ‘다름을 이해하자’는 메시지에 머물렀다면, 최근 흐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장애를 일상의 감각 경험으로 풀어내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시각이나 청각처럼 감각 하나를 캐릭터로 의인화해 아이 눈높이에서 설명하는 방식은 국내외 그림책 시장에서 공통으로 관찰되는 흐름이다. 이 책은 보청기라는 의료기기를 소리요정이라는 캐릭터로 바꿔, 난청 어린이 스스로 자신의 몸을 낯설지 않게 받아들이도록 이끈다. 동시에 비장애 어린이 독자에게는 보청기를 처음 만나는 순간을 자연스럽게 열어주고, 여행지 안내서로도 겹쳐 읽히도록 설계했다. 소재를 의료기기에서 캐릭터로 옮긴 선택 하나가 이야기 전체의 정서를 결정짓는다.
책은 작가 소개와 등장인물 소개로 문을 열고, 5개 장으로 이어진다. 1장에서 토리는 소리요정 루루를 처음 만나고, 2장에서는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의 오래된 전시물이 품은 소리를 듣는다. 3장 무대는 진포해양테마공원, 파도와 바람이 만드는 자연음이 중심이다. 4장은 신흥동 말랭이마을의 굽이진 골목길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을 다루고, 5장은 달빛 아래 꿈나라 여행으로 마무리된다. 각 장은 옛날 배의 ‘뿌앙뿌앙’ 소리, 파도의 ‘찰싹찰싹’ 소리, 시계의 ‘째깍째깍’ 소리처럼 의성어를 촘촘히 박아 넣어, 소리를 활자로 체험하게 하는 구성이다. 책 말미에는 작가의 말과 판권지가 실려 제작 배경을 짚는다.
대상은 유아부터 초등 저학년까지지만, 실제 독서 방식은 가족 단위를 겨냥한다. 미리보기에 실린 ‘우와! 엄마, 아빠! 우리 드디어 군산 가는 거야?’, ‘군산에는 옛날이야기가 가득하대’라는 대사는 부모와 함께 읽는 장면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토리야, 새로운 소리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어!’라는 루루의 말은 이 책이 낯선 곳을 향한 두려움보다 기대를 앞세운다는 점을 드러낸다. 보청기를 착용 중이거나 적응기를 지나는 어린이 가정, 장애 이해 교육 자료를 찾는 유아교육 현장 모두 활용 범위에 든다. 군산 근대문화유산을 미리 공부하고 떠나는 여행 그림책으로도 기능하며, 실제 여행 동선을 그대로 따라가도록 짜여 있다.
작가의 다른 출간작인 《토리와 요정 루루의 공항 소리 체험 모험!》, 《토리의 첫 유람선》, 《토리와 루루의 우당탕탕 섬 모험》과 묶어 보면 시리즈의 궤적이 드러난다. 공항과 유람선, 섬을 거쳐 이번엔 근대 도시 군산으로 무대를 옮긴 셈이다. 매 권 배경만 바뀌는 게 아니라 그 지역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를 하나씩 새로 발굴해온 점이 이 시리즈의 축이다. 군산 편에서는 일제강점기 수탈의 흔적이 남은 근대 건축물이 배경인 만큼, 역사적 무게를 아이 언어로 어떻게 풀어냈는지가 관전 포인트다. 다음 권이 어느 지역, 어떤 감각을 다룰지, 목차 속 ‘작가의 말’이 그림 뒤에 숨은 제작 동기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드러내는지도 확인할 대목이다.
《토리와 루루의 군산 시간여행》은 지승주·JIAN 작가의 작품으로 WIA Book이 2026년 7월 15일 펴냈다. 정가 15,000원, EPUB3와 PDF 형식의 전자책으로 서비스되며, 도서 상세 페이지(https://wiabook.com/books/toriwa-ruruui-gunsan-siganyeohaeng-ko/)에서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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