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오늘] 1926년 8월 15일 – 현해탄의 미스터리 열이틀째, 시신 없는 정사(情死)의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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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안투데이 경기하남

오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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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 시계가 미소 짓는 시간, 100년 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100년 전 오늘] 1926년 8월 15일 – 현해탄의 미스터리 열이틀째, 시신 없는 정사(情死)의 파문

1926년 8월 15일, 일요일. 경성의 아침은 예년보다 눅눅했다. 초순 내내 이어진 궂은 날씨 뒤로 해가 얼굴을 비쳤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정확한 기상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종로 거리 신문 가판대 앞은 한 가지 소식으로 들끓고 있었다. 소프라노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이 현해탄에 몸을 던진 지 열이틀째, 아직 시신도 진상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요일 예배를 마치고 나온 사람들도, 장터로 향하던 이들도 걸음을 멈추고 신문을 펼쳤다.

그날의 경성지난 8월 4일 새벽 4시, 시모노세키를 떠나 부산으로 향하던 관부연락선 덕수환 갑판에서 양장을 입은 여인과 중년 신사가 서로 부둥켜안은 채 바다로 몸을 던졌다는 소식이 조선 전역을 흔든 지 열이틀이 지났다. 여인은 조선 최초의 관비 유학 소프라노로 이름을 알린 윤심덕, 신사는 유부남이었던 극작가 김우진이었다. 동아일보는 8월 5일자로 이 소식을 대서특필했고, 이후 매일 새로운 추측 기사가 이어졌다.

문제는 열이틀이 지나도록 두 사람의 시신이 하나도 인양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현해탄의 거센 조류 탓이라는 설명이 나왔지만, 일각에서는 두 사람이 죽음을 위장해 어디론가 떠났다는 소문마저 나돌았다. 확인된 것은 오직 하나, 배가 정해진 항로를 지났고 승객 명부에서 두 사람의 이름이 사라졌다는 사실뿐이다.

조간 신문들은 앞다투어 두 사람의 마지막 행적을 재구성했다. 어느 신문은 시모노세키 여관에서 두 사람이 함께 묵었다는 목격담을 실었고, 다른 신문은 김우진이 출항 전 가족에게 편지를 남겼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어느 쪽도 1차 사료로 명확히 교차 검증되지 않아, 오늘 시점에서는 “전해진다”는 수준으로만 옮길 수밖에 없다.

한편 윤심덕이 정사(情死) 직전 녹음했다는 노래 ‘사의 찬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축음기 음반을 찾는 발길이 크게 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정확한 판매 수치는 확인되지 않으나, 경성 시내 음반 상점마다 이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이어졌다고 한다. 경성 장안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한쪽은 신여성과 유부남의 비극적 사랑에 눈물지었고, 다른 한쪽은 사회 풍기를 어지럽힌 사건이라며 혀를 찼다.

경성과 한반도현해탄 소식이 장안을 뒤덮은 사이, 바다 건너 도쿄에서도 조선인과 얽힌 소식이 날아들었다. 대역사건으로 옥에 갇힌 아나키스트 박열과 그의 동지 가네코 후미코를 촬영한 사진이 논란이 되면서, 지난 8월 11일 담당 판사 다테마쓰가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소식이었다. 사진 속 두 사람이 중죄인답지 않게 자유롭고 다정한 모습이었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두 사건은 서로 다른 갈래였지만, 경성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물음으로 이어졌다. 총독부의 검열과 감시가 조선인의 사생활 구석구석까지 미치는 시대에, 사랑도 죽음도 온전히 자기 것일 수 없다는 씁쓸함이었다. 지방 신문들도 두 소식을 나란히 실으며 경성발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함경도, 전라도 각지에서 올라온 편지에는 “경성 소식이 사실이냐”는 물음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교통과 통신이 더딘 시절, 경성에서 벌어진 일이 지방까지 전해지는 데는 며칠씩 걸렸다. 그런데도 이번 두 소식만큼은 열흘이 넘도록 사그라들지 않고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다.

그날의 세계바다 밖 세계도 조용하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혁명군이 지난 7월 시작한 북벌(北伐)을 이어가며 후난성을 거쳐 우한을 향해 북상하고 있었다. 군벌이 갈라놓은 대륙을 하나로 묶으려는 이 원정은 이후 몇 년에 걸쳐 중국의 지형을 바꿔놓게 된다.

멕시코에서는 정부의 가톨릭 성직자 탄압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사카테카스주에서 체포된 루이스 바티스 사인스 신부가 바로 이날, 8월 15일 총살형에 처해졌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이는 이후 멕시코를 뒤흔들 크리스테로 전쟁의 예고편과도 같았다.

영국에서는 지난 5월 총파업이 끝난 뒤에도 탄광 노동자들의 파업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스탠리 볼드윈 총리의 정부와 광부노조 사이의 대치는 해를 넘길 기세였다.

경성 24시일요일 아침, 정동과 종로의 교회마다 신자들이 모여들었다. 예배를 마친 이들 사이에서도 화제는 단연 현해탄 소식이었다. 낮에는 장터마다 발걸음이 이어졌고, 신문팔이 소년들은 “현해탄 사건 후속보도”를 외치며 거리를 누볐다.

해거름이 되자 종로통 카페와 다방에는 청년들이 모여 앉아 밤늦도록 이 사건을 화두 삼아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해진다. 신여성과 자유연애, 죽음의 진위를 둘러싼 논쟁은 쉬이 끝나지 않았다.

그 주 한 주를 돌아보면, 도쿄발 사진 논란과 현해탄 미스터리가 나란히 신문 지면을 채운 이레였다. 총독부 관보는 평소처럼 인사 소식과 물가 공고만 실었을 뿐, 두 사건에 대해서는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다. 관보의 침묵과 민간 신문의 폭주 사이, 그 간극이 그 주 경성의 풍경이었다.

100년의 거울

1926년의 경성은 신문과 입소문으로 소식을 전했다. 시모노세키에서 벌어진 일이 경성에 닿기까지 꼬박 하루가 걸렸고, 진위를 확인하는 데는 열흘이 넘게 걸렸다. 2026년 오늘, 같은 항로를 오가는 부산-시모노세키 페리는 여전히 다니지만, 소식은 이제 몇 초 만에 전 세계로 퍼진다.

비교 항목 1926년 2026년부산-시모노세키 이동시간배편 약 8시간페리 약 8시간, 항공 약 1시간소식 전파 속도신문·입소문, 수일~수십일실시간 온라인 확산사생활 보호총독부 검열 상존제도적 언론 자유 보장숫자로 보면 이동 시간은 크게 줄지 않았지만, 소식이 퍼지는 속도만큼은 비교조차 무색할 정도로 빨라졌다. 하지만 사생활과 진실 사이에서 소문이 앞서가는 풍경만큼은, 100년이 지난 오늘도 완전히 낯설지만은 않다.

내일 8월 16일, 열사흘째로 접어드는 현해탄의 소식은 또 어떤 얼굴로 신문 지면을 채울까. 시신 없는 미스터리도, 도쿄발 사진 논란의 뒷이야기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성의 일요일 밤이 저물어간다. 내일 아침 10시 10분,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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