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브릿지] 제4권 · 제13장 · 새벽 5시 50분 톈탄공원에서 만난 광장무, 저는 그 리듬을 다시 배웠습니다

Photo of author

By 코리안투데이 경기하남

새벽 5시 50분, 베이징 톈탄공원 회랑에 도착했을 때 저는 아직 하늘도 채 밝지 않은 시각에 이토록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는 사실에 먼저 놀랐습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몸을 풀던 한 어르신이 저를 보고 웃으며 자리를 내주었고, 저는 그 옆에 서서 처음으로 광장무 대열의 끝자락에 끼어보았습니다. 같은 시각 서울 남산 둘레길에서는 등산 스틱을 짚은 60대들이 말없이 줄지어 오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두 장면이 겹쳐 떠오를 때마다 저는 이 책의 제목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취재 중 만난 중국사회과학원 인구·노동경제연구소의 왕샤오후이 부연구원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광장무는 단순한 운동이 아닙니다. 은퇴 후 사회와 다시 연결되는 광장이고, 외로움을 이기는 리듬이며, 세대가 섞이는 유일한 공공 무대입니다. 지금 중국 실버시장을 이해하려면 먼저 공원의 스피커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이 말을 듣던 순간, 저는 톈탄공원의 회랑에서 느꼈던 그 낯선 활기의 정체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운동이라기보다 하루를 여는 의식에 가까웠습니다.

숫자로 보면 이 풍경의 규모는 짐작보다 훨씬 큽니다. 중국신화통신이 2025년 10월 보도한 바에 따르면 중국 전역에서 광장무를 즐기는 인구는 약 1억 명에 이릅니다. 중국의 60세 이상 인구가 3억 2,300만 명임을 감안하면, 노인 세 명 중 한 명가량이 한 번쯤은 광장무 대열에 서 본 셈입니다. 한편 한국 문화체육관광부의 2024년 국민생활체육조사에서는 60대 생활체육 참여율이 68.0%로 전 연령대 가운데 1위를 기록했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20대의 참여율이 47.4%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한국의 새벽을 여는 것은 오히려 젊은 세대가 아니라 어르신들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제가 흥미롭게 지켜본 것은 두 나라가 같은 시간에, 같은 이유로 집을 나서면서도 전혀 다른 방식을 택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중국 어르신들은 광장무, 태극권, 서예, 제기차기까지 함께 모여 소리를 만들어냅니다. 국가체육총국이 2015년 표준 안무를 보급하면서 이 문화는 ‘정부가 설계한 민속’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반면 한국 어르신들은 북한산이나 관악산 둘레길에서 혼자, 혹은 부부나 산악회 단위로 조용히 걷습니다. 국토의 64%가 산지인 지리적 조건이 이런 개별적 산행 문화를 만들었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 저는 두 나라의 아침 풍경이 지형과 역사에서부터 갈라져 나왔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이 만남이 제게 의미 있었던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광장무를 ‘시끄러운 아줌마들의 춤’으로만 알고 있던 저의 편견이, 실제로 그 대열 속에 서 본 순간 완전히 뒤집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퇴직 후 잃어버렸던 소속감을 광장에서 되찾고 있었습니다. 반대로 한국의 산길을 혼자 걷는 어르신들에게서는, 굳이 무리 짓지 않아도 되는 단단한 자립의 태도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두 방식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존엄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런 차이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각 사회가 노년을 대하는 태도와 맞닿아 있습니다. 한국은 초고령사회에 먼저 진입하며 근린공원의 야외운동기구, 게이트볼장, 파크골프장처럼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촘촘한 생활체육 인프라를 쌓아왔습니다. 중국은 반대로 국가가 설계한 집단 프로그램으로 3억 명이 넘는 노년 인구를 하나의 공공 무대 위로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다만 최근 상하이와 베이징이 소음 규제를 강화하고, 젊은 세대 일부가 광장무를 ‘민폐’로 여기는 목소리를 웨이보에 올리는 것을 보면, 이 거대한 광장 문화도 세대 간 조율이라는 새로운 과제 앞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의 원고를 정리하며 다시 펼쳐본 취재 수첩에는 왕샤오후이 부연구원의 다른 말도 적혀 있었습니다. “중국의 광장무는 정부가 준 것이 아니라, 어르신들이 스스로 되찾은 것입니다. 처음엔 몇 명이 모여 라디오 하나로 시작했고, 국가는 나중에야 이 흐름을 인정했을 뿐입니다.” 이 대목을 취재 노트에서 다시 읽으며 저는, 제도가 먼저 문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든 문화를 제도가 뒤늦게 뒤따라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톈탄공원의 첫 스피커도, 남산 둘레길의 첫 발자국도, 결국은 누군가의 자발적인 걸음에서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통계청의 2025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1인 가구는 전체 고령가구의 36.1%에 달하고,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2024년 자료에서는 60세 이상 인구 중 배우자와 사별했거나 홀로 사는 비율이 약 18%로 집계됩니다. 두 수치를 나란히 놓고 보면, 결국 두 나라 모두 ‘혼자 남겨지지 않는 법’을 각자의 방식으로 궁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 책을 쓰는 내내, 우리가 나이 들며 잃는 것은 체력만이 아니라 곁에 있어 줄 사람의 숫자라는 사실을 자주 떠올렸습니다. 여러분은 은퇴 이후 매일 아침 누구와 함께, 혹은 혼자, 하루를 시작하고 계신가요.

저는 이 챕터를 쓰면서 독자들께 묻고 싶어졌습니다. 우리는 은퇴 이후에도 여전히 사회의 일부라는 감각을, 어디에서 어떻게 확인하고 있을까요. 산길에서 혼자 되뇌든, 광장에서 여럿이 합창하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방식은 다를 수 있습니다. 다음에 동네 공원을 지나실 때, 야외운동기구 앞에 모인 어르신들의 대화에 잠시 귀 기울여 보시길 권합니다. 그 짧은 순간이 우리 사회가 노년을 어떻게 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창이 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디지털 실버」 제13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톈탄공원의 새벽 풍경과 남산 둘레길의 아침을 함께 걸어온 기록을 더 읽고 싶으신 분들은 도서 상세 페이지(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4-kr/)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기사 원문 보기

<저작권자 ⓒ 코리안투데이(The Korean 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WIA Code — 이 기사 링크
인쇄용 · WIA Code 스캐너로 비추면 인터넷 없이 발행 확인
기사 바로 열기 ·
⇓ PNG 다운로드

댓글 남기기

WIA Family · 88개 언어 무료 학습 게임 — WIAvers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