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혁 시인의 「미(美)」는 한자 ‘美’의 구성에서 출발해 아름다움의 이면에 놓인 희생과 그 역설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익숙하게 사용해 온 ‘아름답다’라는 말 앞에 하나의 생명을 세워놓음으로써 우리가 무엇을 아름답다고 부르는지 되묻는다.
![]() [코리안투데이] 정동혁 시인의 「미(美)」 © 장시백 기자 |
시는 “양(羊)이 크면(大) / 아름답다(美)라고 했던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한다. ‘美’를 ‘羊’과 ‘大’로 풀어보는 전통적인 해석을 시적 상상력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문자적 상상에 머물지 않는다. 첫머리에 등장한 ‘큰 양’과 ‘아름다움’의 관계는 시가 진행되면서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리비아 서트’라는 구체적인 지명은 작품에 현장성을 더한다. 실제 지명을 시 안으로 들여놓은 만큼, 그 이름의 소리와 우리말 표기까지 자연스레 눈길이 간다. 낯선 공간의 이름은 양이 살아온 환경을 독자의 눈앞에 보다 구체적으로 불러낸다.
양치기의 보호 아래 ‘악마의 발톱’을 뜯어 먹으며 살아가는 양에게 시인은 짧게 말한다.
“크게 자랐다.”
이 한 행은 작품의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지점이다. 첫 연의 ‘大’를 자연스럽게 이어받으면서 동시에 크게 자란다는 것이 반드시 축복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예고한다. 거친 환경을 견디며 살아온 양의 성장은 뒤이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의미로 뒤집힌다.
마을 처녀가 시집가는 날, 사람들에게는 축하와 기쁨의 시간이 찾아온다. 그러나 그 경사의 한편에는 가죽이 벗겨진 채 누워 있는 양이 있다. 한쪽에서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하나의 생명이 사라진다. 인간의 축복과 다른 생명의 희생이 한 장면 안에서 겹쳐진다.
시인은 그 모습을 두고
“아름답다, 차마 말 못 하겠다”
고 한다.
첫머리에서 불렸던 ‘아름답다’라는 말이 여기에서 뒤집힌다. 인간에게는 잔치이고 축복이지만, 그 축복의 한편에서 희생된 존재를 바라보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는가. 시인은 답을 내놓기보다 그 질문을 독자에게 돌려준다.
마지막 행의 중심 이미지는 ‘마르지 않은 눈물 한 방울’이다. 앞선 장면에서 이미 양의 존재가 충분히 각인된 터라, 이 한 방울의 이미지만으로도 장면은 선명하게 살아난다. 그 눈물은 어느새 한 마리 양을 넘어 말없이 희생되는 존재들의 슬픔으로 번져간다. 설명을 거둘수록 마지막 한 방울이 남기는 여백은 오히려 깊어진다.
「미(美)」의 힘은 ‘美’라는 익숙한 글자를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데 있다. 아름다움은 누구의 눈으로 바라본 아름다움인가. 인간이 누리는 축복 한편에서 말없이 사라지는 존재는 없는가. 작품은 인간의 시선에서 한 걸음 벗어나 우리가 미처 바라보지 않았던 생명의 자리까지 시선을 옮겨놓는다.
제목 ‘미(美)’ 역시 작품을 읽기 전과 읽은 뒤의 의미가 달라진다. 처음에는 아름다움을 뜻하는 한 글자였지만, 마지막에 이르면 오히려 ‘무엇을 아름답다고 부를 수 있는가’를 묻는 질문이 된다.
한자의 조형적 특성에서 출발해 한 생명의 희생과 인간의 윤리적 성찰까지 나아간 「미(美)」. 이 시가 끝내 묻는 것은 아름다움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아름답다고 부르는 것의 뒤편까지 바라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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