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네 시, 강화읍 저희 집 부엌에는 아직 불빛 하나 없습니다. 저는 물 한 잔을 따라 마시고 식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켭니다. 화면이 밝아지는 순간, 창밖 마당의 감나무 그림자가 흔들리는 게 보입니다. 며칠 전 옆집 할머니가 새벽에 우리 집 부엌 불빛을 보시고는 “새댁, 그 시간에 안 자고 뭐 하는 거야” 하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웃으며 “컴퓨터가 밤새 해둔 일이 있어서 확인하러 나왔어요” 하고 답했습니다.
![]() [코리안투데이] 새벽 부엌에서 노트북 켜는 손 © 장형임 칼럼니스트 |
강화는 아직 닭 울음소리가 하루를 여는 곳입니다. 저희 집 뒷마당에서도 다섯 시쯤 되면 어김없이 그 소리가 들립니다. 그런데 저는 그보다 한 시간쯤 먼저 일어나 앉습니다. 밤사이 저 대신 글감을 정리해 둔 컴퓨터의 흔적을 살펴보는 일이 제 하루의 첫 순서이기 때문입니다.
화면을 열면 밤새 쌓인 목록이 줄줄이 떠 있습니다. 강화 곳곳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소식들이 초안 형태로 정리되어 있고, 저는 커피 대신 물 한 잔을 옆에 두고 하나씩 읽어 내려갑니다. 어떤 날은 열 줄짜리 초안이 마음에 쏙 들고, 어떤 날은 앞뒤가 뒤바뀐 문장을 만나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그럴 때 제가 하는 일은 손으로 다시 매만지는 것입니다. 강화 사람들이 실제로 쓰는 말투로 바꾸고, 낯선 지명이 잘못 적혀 있으면 지도를 펴서 확인하고, 밋밋한 문장에는 제가 오가며 본 풍경 한 조각을 끼워 넣습니다. 이 작업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오롯이 제 몫이라고 느낍니다.
지난주에는 이장님이 마을회관 앞에서 저를 붙잡고 물으셨습니다. “요즘은 기계가 다 써 준다며, 자네는 뭐 하는 거야.” 저는 잠깐 생각하다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밤새 재료를 모아다 놓으면, 그걸 강화 사람 말로 다시 옮기는 건 제가 해요. 씨는 뿌려져 있어도 김을 매야 자라는 것처럼요.” 이장님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더 묻지 않으셨습니다.
밭일 나가는 이웃들도 새벽 일찍 하루를 시작합니다. 어둠 속에서 장화를 신고 손전등을 챙겨 나서는 뒷모습을 창 너머로 볼 때마다, 저는 제가 하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씨앗을 심는 대신 문장을 심고, 잡초를 뽑는 대신 군더더기를 걷어내는 것뿐입니다. 도구는 낯설어도 새벽에 몸을 일으키는 마음은 똑같습니다.
여러분은 새벽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무엇을 확인하시나요. 날씨인지, 밭인지, 아니면 밤사이 온 소식인지 궁금해집니다.
해가 뜨기 전에 저는 그날 내보낼 글을 얼추 추려 놓습니다. 마당의 감나무 그림자가 옅어지고 닭이 울면, 그제야 저는 노트북을 덮고 진짜 하루를 시작합니다. 컴퓨터가 밤을 새워 모아 준 것들을 사람의 손으로 다듬어 세상에 내보내는 이 새벽의 시간이, 저에게는 섬과 인공지능이 함께 사는 방식처럼 느껴집니다.
이 이야기와 이어지는 기록은 제가 강화에서 쓰고 만든 책과 서비스에도 담겨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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