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브릿지] 제5권 · 제5장 · 전화벨이 울리지 않는 집, 법이 채울 수 있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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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안투데이 경기하남

저는 몇 해 전, 서울 변두리의 한 지역노인보호전문기관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상담사 한 분이 오래된 상담일지 더미를 앞에 두고, 신고 전화를 받을 때마다 목소리 톤을 어떻게 낮추는지 제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학대를 당한 어르신은 대부분 가해자가 자식이라는 사실을 먼저 감추려고 하세요.” 그 한마디가 저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오늘은 그날 들었던 이야기와, 이후 취재차 베이징에서 만난 한 법률구조 담당자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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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만난 상담사는 2024년 한 해 동안 자신이 속한 기관에서만 수십 건의 학대 사례를 다뤘다고 했습니다. 전국적으로 보면 그해 노인학대 신고는 22,746건이 접수되었고, 그 중 7,167건이 실제 학대로 판정되었습니다. 4년 전과 비교하면 14.5퍼센트가 늘어난 수치입니다. 상담사는 이 숫자를 읽어 주며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늘어난 게 꼭 나쁜 소식만은 아니에요. 예전엔 신고조차 안 됐던 일들이 이제는 드러나는 거니까요.” 저는 그 말을 챕터의 한 문장으로 옮겨 적어 두었습니다. “법이 노인을 지킨다는 것은 조문 한 줄을 늘리는 일이 아니라, 그 법이 실제로 닿지 못했던 가정의 문턱을 넘는 일이다.”

학대의 88.2퍼센트가 가정 안에서 일어나고, 가해자의 37퍼센트 이상이 아들이라는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잠시 말을 잃었습니다. 법은 이 숫자 앞에서 두 갈래 길을 택했습니다. 하나는 처벌을 촘촘히 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이라는 관계 자체에 개입하는 길입니다. 2025년 보건복지부가 도입한 AI 기반 재학대 예방 모니터링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과거 사례의 패턴을 학습시켜 위험한 가정을 먼저 찾아가려는 시도인데, 저는 이것이 기술의 진보라기보다 태도의 진보라고 느꼈습니다. 신고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다가가겠다는 태도 말입니다.

같은 질문을 들고 저는 중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중국의 60세 이상 인구는 2024년 기준 3억 1,031만 명, 전체 인구의 22퍼센트에 이릅니다. 한 도시의 인구가 아니라 나라 하나에 맞먹는 규모의 사람들이 노년을 살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제가 만난 법률구조센터 담당자는 2025년 민정부와 최고인민법원 등 7개 부처가 함께 내놓은 공동지침을 언급하며, 이제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도 법원까지 오지 않고 재택으로 사건을 접수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 변화를 “문 앞까지 찾아가는 법원”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양로’라는 이름을 내세운 사기와 재산권 침해에 대한 가중처벌 조항도 함께 강화되었다고 했습니다. 한국이 가정의 문턱을 넘으려 한다면, 중국은 법원의 문턱을 낮추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 두 장면을 나란히 놓고 보면서 저는 어떤 의미를 발견했습니다. 한국의 「노인복지법」이 1981년 제정 이후 개정을 거듭하며 세밀함을 더해 왔다면, 중국의 「노인권익보장법」은 1996년 제정, 2012년과 2018년 개정을 거치며 무게중심을 가족의 책임에서 국가와 사법의 책임으로 옮겨 왔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2012년 개정 당시 자녀에게 ‘부모를 자주 찾아뵐 의무’를 법문에 직접 새겼던 나라가, 십여 년 만에 온라인 소송과 재택 접수라는 전혀 다른 언어로 노인을 보호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효를 법으로 강제하던 시대에서, 권리를 사법으로 보장하는 시대로 건너온 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인구구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고령화율 7퍼센트에서 20퍼센트까지 도달하는 데 25년이 걸렸지만, 중국은 절대 규모가 워낙 커서 해마다 부산시 인구만큼의 노인이 새로 생겨나는 셈이라고 합니다. 두 나라 모두 초고령사회라는, 인류가 아직 충분히 겪어보지 못한 지형 위에 서 있습니다.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중국이 양로 복지에 누적 5,600억 위안을 투입한 배경에도, 법률 서비스 인프라를 함께 넓히지 않으면 그 많은 인구를 결코 보호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단순한 정책 통계가 아니라, 한 사회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읽고 싶습니다. 늙어간다는 것이 정말 권리의 축소를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보호의 시작을 뜻하는 것인지 하는 질문 말입니다.

챕터를 쓰면서 저는 베이징 교외의 한 커뮤니티 센터에서 만난 여든두 살 할머니의 말도 함께 옮겨 적었습니다. “우리 세대는 부양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자랐는데, 손주 세대는 부양을 선택으로 압니다.” 그는 이 변화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법이 그 빈자리를 메워주면 된다”고 담담히 말했을 뿐입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노인 1인 가구 비율이 2000년 16퍼센트에서 2024년 36퍼센트를 넘어섰다는 통계를 전하자, 한 어르신은 “숫자가 아니라 전화벨 소리로 느껴진다”고 답했습니다. 걸려오지 않는 전화, 울리지 않는 초인종이 곧 그 통계의 실체라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이 말이 두 나라의 어떤 정책보다 정확하게 문제의 크기를 알려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늘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법과 제도가 아무리 촘촘해져도, 결국 그 그물 사이로 빠져나가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채울 수 있는 몫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거창한 제도가 아니라, 이웃의 이름을 하나 더 기억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동네에는, 오늘 안부를 물어야 할 어르신이 몇 분이나 계신가요.

저는 이 원고를 쓰면서 독자 여러분께 하나 여쭙고 싶어졌습니다. 우리 곁의 어르신이 겪는 어려움 중에, 신고조차 되지 않은 채 넘어가는 일은 얼마나 될까요. 법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그 문턱을 먼저 알아채고 넘는 일은 결국 곁에 있는 사람의 몫일 때가 많습니다. 상담사의 목소리 톤 하나, 이웃의 짧은 안부 전화 한 통이 때로는 법조문보다 먼저 누군가를 지켜낼 수 있다고, 저는 그날 이후로 믿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함께 늙어가는 법」 제5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도서 상세 페이지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5-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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