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지기 전에, 집이 먼저 말을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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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안투데이 경기하남

위아쌤 마음돌봄 신호 · 제 24회글 김미희 칼럼니스트부모님을 돌보는 하루는 대개 작은 걱정으로 채워집니다. 약은 제때 드셨는지, 식사는 하셨는지, 그리고 내가 없는 사이에 혹시 넘어지지는 않으셨는지. 그 중에서도 마지막 걱정은 유난히 오래 마음에 남는데, 오늘은 그 걱정을 막연한 불안으로 두지 않고 우리 손으로 하나씩 살펴볼 수 있는 일로 바꿔 보려고 합니다.

익숙한 집이 가장 낯설어지는 순간낙상이라고 하면 흔히 빙판길이나 계단 같은 바깥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런데 돌봄의 자리에서 지켜보면, 부모님이 휘청이는 순간은 오히려 수십 년을 살아온 집 안에서 더 자주 찾아옵니다. 너무 익숙한 공간이라 발밑을 살피지 않게 되고, 몸은 예전 같지 않은데 걸음은 예전 습관대로 옮겨지기 때문입니다. 집은 그대로인데 그 안을 걷는 사람이 달라졌다는 것, 점검은 바로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됩니다.

저도 부모님 곁에서 지내며 이 점을 늦게 깨달았습니다. 제 눈에는 아무 문제 없는 거실이었는데, 어머니 눈높이와 걸음 폭으로 다시 걸어 보니 걸리는 곳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늘 그 자리에 있던 방석, 늘 접혀 있던 매트 끝, 늘 어두웠던 복도 모퉁이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위험은 대단한 곳에 숨어 있지 않고,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다시 보지 않던 곳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점검은 새 물건을 들이는 일보다 ‘다시 보는 일’에 가깝습니다. 내 걸음이 아니라 부모님의 걸음으로, 낮의 눈이 아니라 밤의 눈으로 집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입니다. 돌봄 현장에서 쓰는 점검 목록도 결국 현관, 욕실, 조명, 생활 동선이라는 몇 개의 자리로 모입니다. 그 자리들을 차례로 함께 걸어 보겠습니다.

현관, 집의 첫걸음과 마지막 걸음현관은 하루에도 여러 번 몸의 자세가 크게 바뀌는 곳입니다. 신발을 벗고 신느라 한쪽 발로 서고, 허리를 숙였다가 일어나고, 높이가 다른 바닥을 오르내립니다. 젊을 때는 의식하지 않던 이 짧은 동작들이 나이가 들면 균형을 시험하는 순간이 됩니다. 게다가 외출에서 돌아올 때는 손에 짐을 들고 있거나 몸이 지쳐 있어 더 서두르게 됩니다.

흔히 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현관 바닥에 선 채로 한 손은 벽을 짚고 다른 손으로 신발 뒤축을 당기시는 모습입니다. 신발장 문을 붙잡고 몸을 지탱하시기도 하는데, 그 문은 사람의 무게를 받치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비 오는 날이면 현관 타일에 물기가 남고, 그 위에 얇은 발매트가 미끄러지듯 놓여 있기도 합니다.

현관에서는 세 가지를 먼저 살펴보시면 좋습니다. 첫째, 앉아서 신발을 신고 벗을 수 있도록 튼튼하고 낮은 의자나 걸터앉을 자리를 마련합니다. 둘째, 단차가 있는 곳 옆 벽에 손으로 꽉 잡을 수 있는 손잡이를 두고, 신발장 문 대신 그 손잡이를 잡는 습관을 함께 들입니다. 셋째, 발매트는 뒷면이 바닥에 잘 붙는 미끄럼방지 제품으로 바꾸고, 끝이 말려 올라오지 않았는지 가끔 손으로 눌러 확인합니다.

욕실, 물기와 서두름이 만나는 곳욕실은 집 안에서 가장 미끄러운 바닥과 가장 불안정한 동작이 겹치는 공간입니다. 물과 비누 거품이 바닥에 남고, 옷을 벗고 입느라 한 발로 서야 하며, 욕조나 샤워 공간의 턱을 넘어야 합니다. 따뜻한 물에 오래 있다가 일어나면 몸이 순간적으로 휘청하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욕실 점검은 바닥과 손잡이, 그리고 앉을 자리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많은 가정에서 부모님은 욕실에서 세면대 가장자리나 수건걸이를 붙잡고 몸을 일으키십니다. 수건걸이는 손에 닿기 좋은 자리에 있지만, 무게를 버티도록 설치된 경우는 드뭅니다. 또 혼자 씻는 시간을 지키고 싶어 하시는 마음에 도움을 마다하시다가, 서서 발을 씻으려고 한쪽 다리를 드는 순간 균형을 잃기도 합니다. 돌보는 입장에서는 문 밖에서 물소리만 듣고 있는 그 시간이 가장 조마조마합니다.

욕실 바닥에는 미끄럼방지 매트나 미끄럼방지 처리를 해 두고, 사용한 뒤에는 물기를 한 번 훑어 내는 습관을 들이면 좋습니다. 변기 옆과 샤워하는 자리 옆에는 벽에 단단히 고정된 안전 손잡이를 두는 것을 권합니다. 샤워 의자를 두면 앉아서 씻고 앉아서 발을 닦을 수 있어 한 발로 서는 순간이 줄어듭니다. 샴푸와 비누는 허리를 크게 숙이거나 까치발을 하지 않아도 닿는 높이에 두고, 혹시 목욕용 오일을 쓰신다면 바닥에 떨어진 오일은 물보다 훨씬 미끄러우니 바로 닦아 주세요.

한밤의 화장실 길을 밝히는 빛낙상을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시간이 밤입니다. 자다가 깨어 화장실에 가는 길은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어둠 속을 걷는 길입니다. 나이가 들면 어둠에 눈이 적응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리고, 갑자기 켠 밝은 불빛에 눈이 부셔 오히려 앞이 잘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그래서 밤의 조명은 ‘밝게’보다 ‘끊기지 않게’가 더 중요합니다.

부모님 중에는 불을 켜지 않고 더듬어 화장실에 가시는 분이 많습니다. 전기세를 아끼시려는 마음일 수도 있고, 함께 사는 가족을 깨우고 싶지 않은 배려일 수도 있습니다. 스위치가 방문 밖에 있어서 어두운 방을 가로질러야 겨우 불을 켤 수 있는 집도 흔합니다. 그 몇 걸음 사이에 문턱이 있고, 침대 옆에 벗어 둔 슬리퍼가 있습니다.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가는 길을 따라 은은한 수면등이나 발밑을 비추는 센서등을 두면, 어둠 속을 더듬는 걸음이 줄어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침대 머리맡에는 누운 채로 손을 뻗어 켤 수 있는 스탠드를 두고, 일어나기 전에 먼저 불부터 켜는 순서를 함께 정해 두세요. 침대에서 일어날 때는 바로 걷지 말고 잠시 앉아 숨을 고른 뒤 일어서는 습관도 같이 이야기해 보시면 좋습니다. 계단이나 복도에도 낮 동안 그늘지는 곳이 없는지, 전구가 나간 채로 방치된 곳은 없는지 살펴봅니다.

걸려 넘어지는 것들, 그리고 부모님의 마음거실과 침실에서는 발에 걸리는 것들을 찾아보는 것이 핵심입니다. 바닥을 가로지르는 전선, 가장자리가 들뜬 러그, 방 사이의 문턱, 바닥에 쌓아 둔 신문이나 빨래 바구니 같은 것들입니다. 하나하나는 사소해 보이지만, 발을 높이 들지 못하고 끌듯이 걷게 되는 시기에는 이 작은 높이 차이가 걸음을 붙잡습니다. 자주 쓰는 물건이 너무 높거나 너무 낮은 곳에 있어 의자에 올라가거나 깊이 숙여야 하는 것도 함께 점검할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단계에서 많은 가족이 뜻밖의 벽을 만납니다. 바로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내가 아직 그렇게까지 늙지는 않았다”, “멀쩡한 걸 왜 치우냐” 하시며 손잡이 설치나 러그 정리를 마다하시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직접 꾸려 온 살림을 자식이 바꾸겠다고 나서면, 걱정보다 서운함이 먼저 전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점검을 ‘해 드리는 일’이 아니라 ‘함께하는 일’로 만들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부모님께 앞장서서 집을 안내해 달라고 하고, 어디가 불편하셨는지 먼저 여쭤보세요. 바꿀 때도 한꺼번에 다 하기보다 부모님이 직접 고른 것부터 하나씩 바꾸면 그 공간이 여전히 부모님의 것으로 남습니다. 전선은 벽을 따라 정리하고, 러그는 치우거나 미끄럼방지 깔개를 덧대며, 자주 쓰는 그릇과 옷은 허리와 어깨 사이 높이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집 안의 걸음이 한결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마음돌봄 실천

★☆☆오늘 저녁, 부모님과 함께 ‘밤길 따라 걷기’를 해 보세요. ① 방의 불을 끄고 침대에 함께 앉습니다. ② 부모님이 평소 밤에 화장실 가시는 그대로, 천천히 앞장서서 걸어 보시게 합니다. ③ 뒤따라 걸으며 발에 걸리는 것, 손으로 짚게 되는 곳, 너무 어두운 구간을 소리 내어 하나씩 말해 봅니다. ④ 발견한 것을 종이 한 장에 적어 냉장고에 붙여 둡니다. 내 눈이 아니라 부모님의 걸음으로 집을 보게 되어, 미처 몰랐던 자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적어 둔 목록 중 가장 쉬운 것 세 가지를 이번 주에 정리해 보세요. ① 바닥을 가로지르는 전선을 벽 쪽으로 붙여 정리합니다. ② 현관과 욕실 매트를 뒤집어 보고, 바닥에 붙지 않고 밀리는 것은 미끄럼방지 매트로 바꿉니다. ③ 침대 옆에 누운 채로 켤 수 있는 작은 스탠드를 둡니다. 정리한 뒤에는 부모님과 다시 한 번 같은 길을 걸으며 달라진 점을 함께 확인해 보세요. 함께 바꾸고 함께 확인하면 부모님도 이 변화를 ‘내 집을 내가 손본 일’로 받아들이시기 쉬워요.

★★★여유가 생기면 점검을 마친 날, 수고한 서로를 위한 쉼의 시간을 만들어 보세요. ① 부모님과 나란히 의자에 편하게 앉습니다. ② 손수건이나 화장솜에 좋아하시는 향의 오일을 한 방울만 떨어뜨립니다(바닥이나 손에 직접 떨어뜨리지 않아요). ③ 손수건을 코에서 한 뼘쯤 떨어뜨려 들고, 코로 천천히 넷을 세며 들이마시고 입으로 여섯을 세며 내쉬기를 다섯 번 반복합니다. ④ 숨을 고른 뒤 오늘 집을 둘러보며 떠오른 옛 기억, 이 집에 처음 이사 오던 날 같은 이야기를 나눠 봅니다. 걱정으로 시작한 하루를 향과 이야기로 다독이며 마무리하는 자기돌봄의 시간이 될 수 있어요.

살며시 당부최근 넘어지신 적이 있거나 자주 어지러워하시고 걸음이 눈에 띄게 불안정해지셨다면, 집 안 점검과 함께 꼭 의료진과 상담해 원인을 살펴보세요. 손잡이 같은 설비는 벽에 단단히 고정되었는지 설치 후에도 가끔 확인해 주세요.
집을 점검하는 일은 결국 부모님의 걸음을 오래 지켜보는 일입니다. 문턱 하나, 불빛 하나를 고쳐 놓는 손길에는 ‘오늘도 무사히 지나가셨으면’ 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완벽한 집을 만들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오늘 한 번 함께 걸어 본 그 길이, 부모님과 당신이 서로의 걸음을 더 오래 지켜볼 수 있게 해 주는 첫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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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미희 칼럼니스트아로마테라피스트·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병원동행매니저 자격을 가진 김미희 칼럼니스트는 부모님을 직접 돌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과 같은 처지의 돌봄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글을 씁니다. 코리안투데이 인천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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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희 기자: incheonsouth@thekoreanto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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