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KOREAN TODAY
역사는 살아있다
신라 편
제11화: 황룡사 – 신라 불교의 중심
지금 경주 황룡사터에 서면 눈앞에는 건물 대신 넓은 풀밭과 주춧돌만 보입니다. 그런데 이 빈터는 한때 높이 80미터 안팎의 목탑이 서 있던 자리입니다.
황룡사는 553년에 공사를 시작해 약 한 세기에 걸쳐 모습을 갖춘 신라 최대의 사찰입니다. 이곳에는 5미터에 가까운 장륙존상이 모셔졌고, 645년에는 9층 목탑이 올랐습니다. 신라 사람들은 이 절을 부처에게 올리는 공양처이자 나라를 지키는 상징으로 삼았습니다. 이 절은 종교 시설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왕권과 국가 정체성, 당대 최고의 건축 기술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그렇다면 신라는 왜 나라의 힘을 기울여 이토록 거대한 절과 탑을 지었을까요? 그리고 800년 가까이 서 있던 그 탑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줄까요?
◆ 시대의 풍경
6세기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에 비해 불교를 늦게 받아들였습니다.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가 공인되었고(527년 무렵), 진흥왕(재위 540~576년)이 이를 국가 사업으로 키웠습니다. 한강 유역 진출과 가야 병합으로 영토가 급격히 넓어지던 때였습니다. 새로 편입된 지역의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의 질서로 묶어 줄 사상적 장치가 필요했고, 불교가 그 역할을 맡았습니다.
553년(진흥왕 14년) 왕은 월성 동쪽에 새 궁궐을 지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터에서 황룡이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자 계획을 바꿔 궁궐 대신 절을 세웠고, 이름을 황룡사라 했습니다. 공사는 569년 무렵 1차로 마무리되었고, 574년에는 구리 3만 5천여 근과 도금용 황금을 들여 장륙존상을 주조했다고 《삼국사기》는 적고 있습니다. 이어 선덕여왕 때인 645년,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의 건의로 9층 목탑이 완공되었습니다. 이 탑은 643년 무렵 공사를 시작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다만 착공과 완공 연도, 공사 기간은 자료마다 약간 다르게 정리됩니다.
“(선덕왕 14년) 3월, 황룡사탑을 세웠다. 자장의 청을 따른 것이다.” (취지를 풀어 옮긴 것)
◆ 같은 시대, 다른 세계
🏛️ 중국
탑이 완공된 645년은 당 태종이 고구려 원정에 나선 해입니다. 당은 신라에 군사적으로 기댈 수 있는 상대이자, 자장이 불법을 구하러 다녀온 문화의 본고장이었습니다.
🗿 유럽/중동
비잔틴 제국은 537년 완성된 하기아 소피아(성 소피아 대성당)를 두고 있었습니다. 같은 무렵 이슬람 세력은 이집트와 시리아로 빠르게 뻗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 기타 지역
일본은 아스카 시대였습니다. 백제 기술자들의 도움으로 호류지 같은 사찰이 지어졌고, 645년에는 다이카 개신으로 이어지는 정변이 일어났습니다.
[이미지: 황룡사 창건에서 세계유산 등재까지의 연표 (553~2000년)]
⚔️ 그날의 현장
“645년 서라벌의 하늘 위로 목탑의 마지막 층이 올라간다. 아래에서는 목수들이 올려다보며 숨을 죽이고, 탑 꼭대기의 쇠기둥이 한낮의 빛을 받아 금빛으로 번쩍인다. 월성 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한껏 젖힌다.”
“백제에서 건너온 장인 아비지는 이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적국의 왕이 세우는 탑이라는 마음의 갈등 끝에 그는 끝내 끌을 놓지 않았다고 전한다. 이 장면은 《삼국유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상상해 본 것이다.”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9층 목탑은 신라가 적으로 삼은 이웃 나라들을 눌러 이긴다는 호국의 염원을 담고 있었습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자장이 당나라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만났고, 보살은 “황룡사의 호법룡이 곧 나의 큰아들이니, 절에 9층탑을 세우면 이웃 나라가 항복할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고 합니다. 각 층은 일본, 중국, 오월, 탁라, 응유, 말갈, 단국, 여적, 예맥 등 주변 나라를 상징한다고 전해집니다. 이것은 신앙이자 정치 선언이기도 했습니다.
고고학적 증거는 이 이야기가 허구만은 아님을 보여 줍니다. 1976년부터 이어진 발굴로 황룡사는 약 2만 5천 평에 이르는 큰 가람이었음이 확인되었고, 4만 점이 넘는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그중에는 높이 182센티미터의 대형 치미도 있습니다. 탑터에는 중앙 기둥을 받치던 심초석과 지름 1미터 안팎의 주춧돌 64개가 남아 있습니다. 872년에 쓴 찰주본기를 환산하면 탑의 높이는 약 80미터로 추정되지만, 이 수치는 척도 환산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확정된 값은 아닙니다.
정치적으로 보면 황룡사는 왕실의 권위를 높이는 장치였습니다. 진흥왕의 장륙존상은 왕을 부처에 견주는 왕즉불(王卽佛) 사상과 맞닿아 있고, 선덕여왕의 9층탑은 여성 군주의 불안한 정통성을 종교의 힘으로 보완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구리와 황금, 대규모 장인 동원이 필요했으니 국가가 통제하는 막대한 자원이 이 사업에 모였다는 뜻입니다. 사회적으로는 승려 자장과 원광 같은 인물들이 국가 운영의 조언자로 떠올랐습니다. 이 모든 일은 호국불교라는 이름으로 묶였습니다.
시대
6~7세기 (553~645년)
핵심 인물
진흥왕, 선덕여왕, 자장, 아비지
핵심 사건
황룡사 창건, 장륙존상 주조, 9층 목탑 건립
영향
호국불교의 상징, 신라 건축 기술의 정점
🔍 학계의 시각
주류 견해
9층 탑은 주변 아홉 나라를 누른다는 호국 사상과 왕권 강화를 위해 세워졌고, 높이는 80미터 안팎으로 추정한다. 복원도 이 기록과 발굴 성과를 바탕으로 추진되고 있다.
대안적 견해
탑의 높이는 척도와 환산 방식에 따라 68~82미터까지 달라지므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 있다. 또한 금당의 기단 형식 등 일부 복원안은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 오늘 우리에게 묻다
나라가 가장 큰 건축물에 무엇을 담는가는 그 나라가 스스로를 어떻게 보는지를 드러냅니다. 신라는 종교 건축에 국가의 정체성과 안보 의지를 함께 새겼습니다. 오늘날에도 국가 상징 건축물과 문화유산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다만 요즘은 그것을 위협의 표시가 아니라 공동체의 기억을 나누는 공간으로 읽으려는 흐름이 강합니다.
황룡사는 사라졌지만 그 가치는 오히려 더 또렷해졌습니다.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경주역사유적지구)에 포함되었고, 2006년부터 발굴과 연구가 이어져 왔으며, 9층 목탑 10분의 1 모형도 제작되었습니다. 복원 사업은 2천억 원대 규모로 논의되어 왔고, 증강현실(AR)로 옛 모습을 되살리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존할 것인가, 다시 지을 것인가라는 물음은 우리 시대에 던져진 숙제입니다.
| 구분 | 신라 시대 | 현재 |
|---|---|---|
| 정치/안보 | 9층 탑으로 이웃 나라의 침입을 막으려는 호국 신앙 | 국가 상징물과 문화유산을 통한 정체성과 연대 강화 |
| 군사/외교 | 당나라에서 돌아온 승려 자장의 건의와 대외 정세 대응 | 문화유산 외교와 세계유산 공동 등재 협력 |
| 문화/정신 | 백제 장인까지 불러 모은 국가 단위의 기술·신앙 결집 | 디지털 복원·AR로 되살리는 문화유산, K-컬처의 뿌리 |
[이미지: 신라 정신과 현대 한국 – 황룡사 목탑의 높이를 동시대 건축물과 비교한 도해. 수치는 모두 대략적인 추정치]
📚 더 깊이 알아보기
- 탑터 심초석의 사리공에서는 금동 사리함 등 사리장엄이 나왔고, 오랜 보존 처리를 거쳐 공개되었습니다.
- 탑은 완공 뒤에도 벼락을 여러 번 맞았으나 그때마다 수리되었고, 1238년 몽골 침입 때의 화재로 사라진 뒤에는 다시 세워지지 못했습니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삼국유사》 ‘황룡사 장륙’, ‘황룡사 구층탑’ 조와 1984년 《황룡사 유적 발굴조사보고서》를 함께 읽어 보세요.
살아있는 역사의 목소리
황룡사는 신라 사람들이 믿음, 권력, 기술, 그리고 나라의 앞날을 한곳에 모아 세운 건축이었습니다. 건물은 불탔지만 그 뜻을 읽어 내는 일은 오늘의 몫입니다.
“탑은 사라졌어도, 하늘을 향해 쌓아 올린 그 마음은 아직 서라벌 들판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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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작성되었으며, 다양한 학술적 견해를 균형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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