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분, 낱말퍼즐 앞에 나란히 앉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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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안투데이 경기하남

위아쌤 마음돌봄 신호 · 제 28회

글 김미희 칼럼니스트

위아쌤 마음돌봄 신호
아침 설거지를 마치고 약을 챙기고 나면, 하루가 벌써 반쯤 지나간 것처럼 몸이 무거워지곤 합니다. 그 와중에 ‘부모님 머리 쓰는 활동도 좀 해드려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 고마운 마음보다 숙제가 하나 더 늘어난 것 같은 막막함이 먼저 찾아오지요. 오늘은 그 숙제를 조금 내려놓고, 오전빛이 드는 책상 앞에 낱말퍼즐 한 장과 색연필 몇 자루를 두고 나란히 앉는 10분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거창한 계획보다 ‘10분’이 오래 갑니다

돌봄을 하다 보면 마음먹은 일이 오래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돌보는 사람의 하루에는 예고 없이 끼어드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병원 예약, 갑작스러운 컨디션 변화, 식사 준비와 빨래 사이에서 한 시간짜리 계획은 금세 밀려나 버립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시간을 작게 잡는 것이 오히려 오래 가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런 경험을 하셨을 겁니다. 마음먹고 두꺼운 학습지나 퍼즐책을 사 와서 첫날은 의욕적으로 몇 장을 함께 풀었는데, 사흘쯤 지나자 책은 서랍 속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부모님도 ‘오늘은 피곤하다’며 손사래를 치시고, 나 역시 다시 꺼낼 기운이 없어 그냥 덮어 두게 되지요. 그러고 나면 괜히 마음 한구석에 미안함과 자책이 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루 10분’이라는 작은 약속을 권하고 싶습니다. 아침 식사 후 차 한 잔 마실 때, 혹은 오전 햇빛이 창가에 머무를 때처럼 매일 비슷한 때를 정해 두면 따로 결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쉽습니다. 10분이 지나면 아쉬워도 그날은 거기서 멈추는 것이 좋습니다. 조금 아쉽게 끝나야 내일 다시 앉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시험이 아니라 대화가 되도록

인지 자극 활동이라고 하면 문제를 풀고 정답을 맞히는 장면을 먼저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뒤로 누군가 내 옆에서 정답을 확인하고 있다는 느낌은 생각보다 마음을 움츠러들게 합니다. 특히 나이가 들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계신 부모님께는, 틀리는 순간이 작은 상처로 남을 수 있습니다. 활동의 목적이 정답이 아니라 ‘함께 생각하는 즐거움’이라는 것을 돌보는 사람이 먼저 마음에 새겨 두면 좋겠습니다.

퍼즐 한 칸을 두고 부모님이 한참 머뭇거리실 때, 나도 모르게 ‘이거 아까 말씀하셨잖아요’ 하는 말이 튀어나올 뻔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 말에는 답답함보다 걱정이 더 많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도 부모님 얼굴이 굳어지고 연필을 슬그머니 내려놓으시는 모습을 보면, 그날의 10분은 서로에게 무거운 시간이 되고 맙니다. 저 역시 그런 순간 앞에서 말을 삼키는 연습을 오래 했습니다.

답이 쉽게 나오지 않을 때는 첫 글자를 살짝 알려 드리거나, ‘저도 이건 잘 모르겠네요’ 하며 같이 고민하는 쪽에 서 보세요. 문제에서 이야기가 새어 나가도 괜찮습니다. ‘사과’라는 낱말에서 고향 과수원 이야기가 나오고, ‘기차’라는 낱말에서 젊은 날 서울 가던 기억이 흘러나온다면, 그날은 퍼즐을 다 채우지 못해도 충분히 좋은 시간입니다. 함께 기억을 떠올리는 대화야말로 이 10분이 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선물일지 모릅니다.

집 안에 있는 것들로 충분합니다

뇌를 건강하게 쓰는 습관이라고 해서 특별한 교구나 비싼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부모님께 익숙한 물건과 소재일수록 마음 편하게 시작하실 수 있습니다. 낯선 것을 배우는 부담보다, 알고 있던 것을 다시 꺼내 쓰는 기쁨이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할지 고민될 때는 부모님이 평소 좋아하시던 것에서 출발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예를 들어 신문 한쪽의 낱말퍼즐, 큰 그림의 색칠 공책, 옛날 노래 가사를 떠올려 함께 적어 보기,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며 사진 속 사람과 장소 이름 말하기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장보기 목록을 함께 쓰거나, 달력을 보며 이번 주에 있을 일을 짚어 보는 것도 훌륭한 활동이 될 수 있습니다. 손재주가 있으셨던 분이라면 콩 고르기나 수건 개기처럼 손을 쓰는 일을 맡겨 드리는 것도 좋습니다. 무엇이든 부모님 얼굴에 ‘이건 내가 잘 알지’ 하는 표정이 스치는 활동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한 가지 활동만 고집하기보다 요일마다 조금씩 바꿔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월요일엔 퍼즐, 수요일엔 사진첩, 금요일엔 노래 가사처럼 가볍게 정해 두면 지루함이 덜하고, 부모님이 어떤 활동에서 더 즐거워하시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반응이 좋았던 활동은 조금 더 자주, 시큰둥하셨던 활동은 잠시 쉬어 가면 됩니다. 정해진 정답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이 시간의 편안함입니다.

그 10분은 돌보는 나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부모님을 위해 시작한 시간이지만, 나란히 앉아 있다 보면 그 10분이 나에게도 쉼이 되어 준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돌봄의 하루는 대부분 무언가를 ‘처리하는’ 시간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약을 챙기고, 밥을 차리고, 다음 일정을 확인하는 사이에 부모님과 눈을 맞추고 천천히 이야기 나눌 틈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퍼즐 한 장을 사이에 둔 10분은 그 바쁜 흐름 속에 잠시 쉼표를 찍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날은 부모님이 퍼즐보다 창밖의 햇빛 이야기를 더 오래 하실 수도 있고, 어떤 날은 내가 먼저 지쳐 집중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날에는 계획대로 하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탓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함께 앉아 있었다는 것, 같은 햇빛 아래서 같은 종이를 바라보았다는 것만으로도 그날의 몫은 다한 것입니다. 돌봄은 완벽하게 해내는 일이 아니라 오래 곁에 머무는 일이니까요.

저는 이 시간을 시작하기 전에 좋아하는 향을 손수건에 한 방울 떨어뜨려 책상 한쪽에 두곤 합니다. 은은한 오렌지나 라벤더 향이 방 안에 퍼지면, 이제 잠시 마음을 내려놓아도 된다는 신호처럼 느껴져 기분을 다독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향이 부담스러우시다면 따뜻한 보리차 한 잔이어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10분을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쉬는 시간’으로 느낄 수 있도록 작은 의식을 만들어 두는 것입니다.

오늘의 마음돌봄 실천

★☆☆[오늘 바로 – 달력 보며 오늘 말하기] ① 부모님과 나란히 앉아 벽이나 탁상 달력을 함께 바라봅니다. ② 손가락으로 오늘 날짜를 크게 짚으며 ‘오늘은 몇 월 며칠, 무슨 요일’이라고 함께 소리 내어 말합니다. ③ 오늘 할 일 한 가지(예: 오후 산책, 저녁 반찬)를 부모님이 정하시도록 여쭙고, 그 내용을 큰 글씨로 달력 칸에 적어 드립니다. ④ 다 적으면 ‘좋아요’ 하고 가볍게 박수를 한 번 칩니다. 날짜와 할 일을 함께 말하고 적는 짧은 순서가 하루의 흐름을 함께 그려 보는 즐거운 시작이 될 수 있어요.

★★☆[한 걸음 더 – 낱말퍼즐 세 칸 채우기] ① 오전빛이 드는 책상에 낱말퍼즐 한 장과 굵은 색연필을 준비합니다. ② 시작 전, 두 손을 앞으로 쭉 뻗어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다섯 번 천천히 함께 합니다. ③ 퍼즐에서 쉬워 보이는 칸 세 개만 골라, 부모님이 좋아하는 색연필로 한 칸씩 채워 봅니다. ④ 막히면 첫 글자를 살짝 알려 드리고, 낱말에서 떠오르는 옛이야기가 있으면 퍼즐보다 이야기를 먼저 들어 드립니다. ⑤ 세 칸을 채우면 오늘은 거기서 마칩니다. 손을 풀고 짧게 집중하는 경험이 부담 없이 머리를 쓰는 즐거움으로 이어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여유가 될 때 – 사진첩 한 장 이야기] ① 오래된 사진첩을 꺼내 부모님 무릎 위에 펼쳐 드립니다. ② 사진 한 장을 함께 골라, ‘여기가 어디예요?’, ‘이때 몇 살쯤이셨어요?’, ‘옆에 계신 분은 누구세요?’ 세 가지만 천천히 여쭙니다. ③ 부모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를 사진 옆 작은 메모지에 한두 줄로 적어 붙여 둡니다. ④ 기억이 잘 나지 않으시면 ‘다음에 또 떠오르면 알려 주세요’ 하고 편하게 다음 사진으로 넘어갑니다. 함께 기억을 떠올리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시간은 부모님께는 지나온 삶을 다시 만나는 기쁨이, 자녀에게는 오래 간직할 이야기가 될 수 있어요.

살며시 당부
부모님이 피곤해하시거나 싫은 기색을 보이시면 그날은 언제든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기억이나 일상생활에서 평소와 다른 변화가 걱정된다면 혼자 짐작하기보다 가까운 의료기관과 편하게 상담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책상 위에 펼쳐진 낱말퍼즐은 다 채우지 못한 채 남을 때가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빈칸 사이사이에 부모님의 웃음과 옛이야기, 그리고 나란히 앉아 있던 오전의 햇빛이 고스란히 담긴다면, 그 종이 한 장은 어떤 완성된 퍼즐보다 귀한 기록이 될 것입니다. 내일 아침에도 색연필 몇 자루를 꺼내 놓고, 서두르지 않는 10분을 함께 시작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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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미희 칼럼니스트
아로마테라피스트·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병원동행매니저 자격을 가진 김미희 칼럼니스트는 부모님을 직접 돌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과 같은 처지의 돌봄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글을 씁니다. 코리안투데이 인천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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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희 기자: incheonsouth@thekoreanto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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