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 10분의 시간 – 1926년 10월 30일 토요일
1926년 10월 30일, 토요일입니다. 음력으로는 9월 25일이지요. 경성의 아침 10시 10분, 한 달 전 단성사에서 막을 올린 영화 〈아리랑〉 이야기가 아직 종로 거리에 맴돌고 있었습니다. 광화문 앞에는 새로 지은 조선총독부 청사가 우뚝 서 있었습니다. 이날의 날씨는 기록을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닷새 뒤인 11월 4일, 우리말과 글을 기리는 첫 ‘가갸날’ 잔치가 열릴 참이었습니다.
※ 이날 하루치 신문 지면 원문은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사건 중심이 아니라 토요일 주제(문화·예술·건축)로 풀어 쓴 기사입니다.
그날의 경성 – 광화문을 가린 새 건물
경성 한복판에는 그해 가장 큰 건물이 서 있었습니다. 조선총독부 새 청사입니다. 1916년에 첫 삽을 떴고, 1925년 12월에 다 지었으며, 1926년 1월 4일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전인 10월 1일, 시정기념일에 맞춰 낙성식을 크게 치렀습니다. 들어간 돈은 675만 1,982엔이라고 국가기록원 자료는 전합니다.
이 건물이 들어서면서 광화문은 동쪽으로 옮겨졌고, 흥례문과 그 회랑, 금천과 영제교는 헐려 나갔습니다. 조선 사람들에게는 임금의 궁궐 앞길이 막힌 셈입니다. 당시 총독은 사이토 마코토였습니다. 이날 이 건물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건물은 그저 말없이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건물 앞을 걸어 종로로 내려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같은 날, 같은 도시에서 조선 사람들은 전혀 다른 건물, 곧 극장 안에서 자기 이야기를 보고 있었습니다.
경성과 한반도 – 영화와 한글, 그리고 신문
〈아리랑〉은 나운규가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을 맡고 주연까지 한 영화입니다. 10월 1일 단성사에서 개봉했고, 한국 영화사 첫 대흥행으로 꼽힙니다. 극장 주인은 조선 사람 박승필이었습니다. 후대 기록에 따르면 변사의 해설이 뜨거워질 때마다 순사가 말리러 나섰고, 영화가 끝나면 관객들이 목 놓아 울며 아리랑을 따라 불렀다고 합니다. 이날 단성사에서 〈아리랑〉이 상영되고 있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의 필름은 지금 남아 있지 않습니다.
말과 글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조선어연구회는 신민사와 함께 11월 4일 서울 식도원에서 첫 ‘가갸날’ 기념식을 열었습니다. 1446년 음력 9월에 훈민정음이 책으로 완성되었다는 실록 기록을 따라 음력 9월 29일을 날로 삼았고, 1926년 양력으로 바꾸니 11월 4일이었습니다. ‘한글’이라는 이름이 아직 낯설어서 ‘가갸거겨’에서 이름을 땄습니다. 이날 10월 30일은 그 잔치까지 닷새 남은 날입니다.
정치의 바닥 물결도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6·10 만세운동이 지나고, 8월 10일에는 강달영 등 43명이 붙잡혔으며 예순 명 남짓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날 새로 잡혀간 사람이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신문은 그 시절 조선 사람의 눈과 귀였습니다. 1926년 발행부수는 동아일보가 29,901부, 일본어 신문 조선신문이 25,428부, 경성일보가 24,919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날의 세계
동아시아. 중국에서는 장제스의 국민혁명군이 북쪽으로 나아가는 북벌이 한창이었습니다. 국민혁명군은 10월 10일 우창을 손에 넣었습니다. 한 신문 색인에는 10월 30일자로 쑨촨팡의 군대가 난창을 다시 차지했다는 짧은 보도가 올라 있지만, 색인 한 줄이라 더 확인이 필요합니다. 로마에서는 10월 28일 교황 비오 11세가 중국인 주교 여섯 명을 서품했습니다. 17세기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일본. 와카쓰키 레이지로 내각이 1926년 1월부터 이어지고 있었고, 다이쇼 천황은 몸이 좋지 않아 아들 히로히토가 섭정을 맡고 있었습니다. 천황은 12월 25일 세상을 떠납니다. 10월 30일 시점에 이 일을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유럽과 아메리카. 런던에서는 10월 19일부터 영국 제국회의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이 회의에서 영국 본국과 자치령이 서로 대등하다는 ‘밸푸어 선언’이 나옵니다. 같은 날 중앙아메리카 니카라과에서는 에밀리아노 차모로 대통령이 물러나 상원의원 세바스티안 우리사에게 권력을 넘겼습니다. 미국 디트로이트에서는 마술사 해리 후디니가 병원에 누워 있었고, 이튿날인 31일 숨을 거둡니다.
경성 24시 – 토요일의 극장 거리
이날 경성의 하루를 시간대별로 그릴 만한 기록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확인된 사실로만 줄거리를 잇겠습니다.
그해 가을 종로의 극장 거리는 조선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었습니다. 단성사는 조선 사람이 주인인 극장이었고, 근처에는 일본 사람 극장들이 몰린 충무로가 있었습니다. 경성은 극장도 둘로 나뉜 도시였습니다. 〈아리랑〉이 개봉한 뒤 종로 거리가 눈물바다였다는 이야기가 전하지만, 이것은 후대에 정리된 일화입니다.
토요일 낮이면 학교를 마친 아이들과 일터를 마친 어른들이 거리로 쏟아졌을 것입니다. 다만 ‘그랬을 것이다’는 사실이 아니라 짐작이므로, 이 기사에서는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물가도 이날 광고를 확인하지 못해 적지 않습니다.
100년의 거울 – 토요일의 문화와 도시
| 항목 | 1926년 10월 | 100년 뒤 |
|---|---|---|
| 영화 | 〈아리랑〉, 단성사 개봉. 필름은 남아 있지 않음 | 한국 영화 탄생 100주년 기념이 이어짐 |
| 한글 | 첫 가갸날 준비 (11월 4일 기념식) | 매년 10월 9일 한글날 |
| 도시의 중심 건물 | 총독부 새 청사가 광화문을 가림 | 총독부 청사는 1990년대에 헐리고 광화문이 제자리로 돌아옴 |
| 신문 | 동아일보 29,901부 (1926년) | 종이보다 화면으로 읽는 시대 |
같은 날 한쪽에서는 제국의 큰 건물이 서고, 다른 한쪽에서는 조선 사람들이 영화와 글자로 자기 자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건물은 헐렸고, 이름 없던 날은 달력에 남았습니다.
내일을 기다리며
내일은 10월 31일 일요일입니다. 바다 건너 디트로이트에서는 후디니가 숨을 거두고, 경성에서는 가갸날을 사흘 앞두고 준비가 한창일 것입니다. 내일 아침 10시 10분, 다시 만나요.
참고: 국가기록원 총독부 청사 해제, 경향신문·서울신문 단성사 관련 기사, 한글학회·한국 언론의 가갸날 기록, Wikipedia(October 1926, 1926 Imperial Conference, 북벌). 당일자 신문 원문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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