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올리언스의 미시시피강 인근에 자리한 카페 뒤 몽드(Café du Monde).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커피와 빵을 즐기는 유명한 카페다. 그러나 박미진 시인은 이 평화로운 일상 너머에 자리한 역사의 아픔을 바라본다. 흑인 노예제의 비극과 오늘날의 자유로운 풍경을 대비시키며, 오랜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슬픔을 한 편의 시에 담아냈다.
![]() [코리안투데이] 박미진 시인의 시 카페 뒤 몽드와 뉴올리언스 카페 풍경을 담은 삽화 © 장시백 기자 |
박미진 시인의 「카페 뒤 몽드」는 미시시피강의 물빛에서 출발한다.
“미시시피강 뉴올리언스 포구는
슬픔의 깊이를 잊지 못해
세월이 흘러도 질푸르다”
시인은 강물의 푸른빛을 자연의 색채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그 물빛에 흑인 노예제의 아픈 역사를 투영한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질푸른 강물은 과거의 고통을 기억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특히 ‘슬픔의 깊이’라는 표현은 강의 깊이와 역사적 비극의 무게를 하나로 연결한다.
이어지는 시구에서는 그 슬픔이 더욱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목화농장으로 팔려간
흑인의 노예시장에서
마지막 자유의 식사”
인간이 물건처럼 사고팔리던 시대,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의 운명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시인이 주목하는 것은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나 제도가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야 했던 한 인간의 마지막 식사다.
“천천히 씹었을
빵 한 조각
오래 식도록 마셨을
커피 한 잔”
여기서 ‘씹었을’과 ‘마셨을’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시인은 과거의 장면을 단정적으로 재현하는 대신 상상으로 복원한다. 자유를 잃기 전 마지막 식사였다면 빵 한 조각을 얼마나 천천히 씹었을까. 커피 한 잔을 얼마나 오래 붙들고 있었을까.
평범한 빵과 커피가 더 이상 평범하지 않게 다가온다. 오늘날 카페에서 누구나 누리는 일상의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간절하고도 비극적인 기억이었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시선은 다시 오늘날의 카페로 돌아온다.
“닮지 않은 나뭇잎 같은
인종들이 바글거리는 카페”
서로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커피를 마시고 일상을 즐긴다. 과거에는 피부색에 따라 자유와 권리가 달랐지만, 오늘날 카페의 풍경은 그 시대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특히 ‘닮지 않은 나뭇잎’이라는 비유가 인상적이다. 나뭇잎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인간도 저마다 다른 모습을 지녔다. 시인은 그 차이를 자연스러운 다양성으로 바라보면서, 차별과 억압의 역사를 은연중에 되돌아보게 한다.
작품의 정서는 마지막 연에서 절정에 이른다.
“울음을 참은 재즈는
가게에서 빠져나와
발자국이 축축하다.”
재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발전한 음악이다. 시인은 그 음악에 ‘울음을 참은’이라는 표현을 부여한다.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의 고통과 그 후손들이 겪어 온 삶의 애환이 음악 속에 스며 있는 듯하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마지막 행의 ‘발자국이 축축하다’라는 표현이다. 재즈는 소리인데 시인은 그 소리에 발자국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그 발자국에 눈물의 흔적을 남긴다. 청각적인 음악이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이미지로 바뀌면서 슬픔이 더욱 생생하게 전달된다.
이는 단순한 의인화를 넘어 서로 다른 감각을 결합한 시적 표현이다. 울음을 참았기에 눈물은 직접 드러나지 않지만, 축축한 발자국을 통해 오히려 더 깊은 슬픔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의 미덕은 과거의 비극을 오늘날의 일상과 자연스럽게 연결했다는 데 있다. 카페 뒤 몽드는 현재의 자유로운 삶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고, 미시시피강은 지워지지 않는 역사의 기억을 간직한 존재가 된다. 빵과 커피는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재즈는 그 모든 시간을 관통하는 슬픔의 목소리가 된다.
제목 「카페 뒤 몽드」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익숙한 관광 명소의 이름을 내세우면서도 작품은 그곳의 낭만보다 그 풍경 너머에 있는 인간의 역사를 바라보게 한다. 독자는 커피 향이 흐르는 현재의 공간에서 자유를 빼앗겼던 사람들의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
박미진 시인의 「카페 뒤 몽드」는 역사를 설명하는 시가 아니라 역사의 아픔을 느끼게 하는 시다. 거창한 구호 없이 빵 한 조각과 커피 한 잔, 그리고 재즈의 발자국만으로 자유의 소중함과 인간의 존엄을 일깨운다.
오늘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커피 한 잔이 먼 과거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붙들고 싶었던 자유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세월이 흘러 풍경은 달라졌지만, 시인이 들려주는 재즈의 발자국은 아직도 축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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