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브릿지] 제2권 · 제4장 · 멀어진 자녀들 — 한중 농촌 노인이 마주한 침묵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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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안투데이 경기하남

몇 해 전, 취재차 들른 경북의 한 산골 마을에서 저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마을회관 앞 평상에 혼자 앉아 계시던 그분은 제게 대뜸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여기 뭐 볼 게 있다고 왔어?” 젊은 사람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마을에서, 낯선 얼굴이 반가우면서도 미안한 듯한 그 표정을 저는 오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날의 기억에서 시작해, 「실버 브릿지」 두 번째 권 제4장에서 다룬 한중 농촌 노인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챕터를 준비하며 다시 확인한 통계는 제가 그 마을에서 느꼈던 것을 숫자로 증명해 주었습니다. “2024년 한국 농가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이 55.8%를 기록했습니다. 농촌에 사는 사람 10명 중 거의 6명이 노인이라는 뜻입니다.” 불과 9년 전인 2015년만 해도 21%였던 수치입니다. 세 배 가까이 뛰어오른 셈이지요. 제가 만난 할머니 마을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젊은 사람 얼굴 보기가 명절 때뿐이라던 그 말이, 이제는 통계표 위의 숫자로 고스란히 되돌아옵니다.

실버 브릿지 주제 이미지

중국 쪽 취재에서 만난 풍경은 규모부터 달랐습니다. 헤이룽장성의 한 농촌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월 108위안, 우리 돈으로 2만 원 남짓한 연금으로 생활하고 계셨습니다. 챕터에 정리했듯 “도시 근로자 양로보험 가입자의 월 평균 수령액은 약 3,742위안인 반면, 농촌 주민 양로보험 가입자는 고작 179위안에 불과합니다.” 스무 배가 넘는 격차입니다. 하루 700원도 안 되는 돈으로 하루를 버텨야 하는 삶이, 같은 나라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실감했습니다.

한국과 중국은 같은 문제를 서로 다른 얼굴로 겪고 있다는 것을, 저는 이 챕터를 쓰며 다시 깨달았습니다. 한국은 ‘비율의 위기’입니다. 면 단위 지역의 76%에 병·의원이 없고, 군 지역 응급의료 취약인구 비율은 60.3%에 달합니다. 중국은 ‘규모의 위기’입니다. 농촌 65세 이상 비율은 17.72%로 도시보다 6.61%포인트 높은 수준이지만, 절대 인구로 따지면 1억 명에 육박하는 노인이 남겨져 있습니다. 자녀가 도시로 떠나며 홀로 남은 ‘유수노인’이라는 말도, 취재 전에는 낯설었지만 이제는 제 마음 한켠에 무겁게 자리 잡은 단어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 만남들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통계 뒤에 있는 얼굴들 때문입니다. 마을회관 평상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도, 헤이룽장성의 그 어르신도, 스스로를 ‘잊혀진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하루하루를 견디고 계실 뿐이었습니다. 저는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통계표의 55.8%, 179위안이라는 숫자는 그 담담함 뒤에 감춰진 구조적 방치를 드러내는 증거였습니다. 도시의 번영이 눈부실수록, 그 그늘에 남겨진 농촌의 침묵은 더 깊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실버 브릿지 데이터 그래프

이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두 나라가 함께 겪는 세대적 흐름이라는 점에서 더 무겁게 다가옵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이재용 선임연구위원의 말처럼 “농촌 고령화는 10년 후 한국 전체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한국의 노인 자살률이 인구 10만 명당 42.2명으로 OECD 평균의 2.6배에 달하고, 농촌 지역에서 유독 높게 나타나는 현실은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중국 역시 14차 5개년 계획에서 농촌 양로 서비스 확충을 핵심 과제로 내세웠지만, 농촌 경로원은 전국 대비 극히 일부인 1.6만 개에 그치고 있어 정책과 현실의 간극이 여전합니다.

취재 노트를 다시 펼치며 눈에 들어온 구절이 하나 있었습니다. 챕터에 이렇게 적어두었더군요. “중국 농촌의 유수노인 중 상당수는 자녀와 일 년에 한두 번, 명절에나 얼굴을 마주한다. 전화조차 자녀의 스마트폰 사용법을 몰라 걸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저는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그 담담했던 헤이룽장성 어르신의 눈빛이 다시 떠오릅니다. 말수는 적었지만, 자녀 이야기가 나올 때만큼은 목소리에 옅은 떨림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저는 통계를 정리하며 새삼 확인했습니다. 농촌 지역 1인 가구 노인의 비율은 해마다 늘고 있고, 그중 상당수가 자녀와 월 1회 이하로 연락한다는 조사 결과를 챕터 말미에 덧붙였습니다. 국가는 다르지만 ‘멀어진 자녀’라는 공통의 서사가 두 나라 농촌을 관통하고 있다는 인상을, 저는 이번 챕터를 쓰며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효(孝)라는 오래된 가치가 산업화와 도시화 앞에서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지, 통계는 담담히 그 균열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 혹은 고향에 남은 어르신과는 마지막으로 언제 긴 통화를 나누셨는지, 저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저는 이 챕터를 쓰며 독자 여러분께 묻고 싶어졌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명절에나 겨우 안부를 확인하는 시골의 부모님이나 친척 어르신이 계시지 않은가요. 원격의료나 이동형 복지 서비스처럼 한국이 먼저 겪은 경험이 오히려 중국 농촌에 필요한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저는 이번 취재를 통해 새롭게 배웠습니다. 위기 속에서 발견한 기회를 나누는 것도, 결국은 그 담담한 얼굴들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그들의 하루」 제4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한중 농촌 노인의 하루하루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2-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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