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브릿지] 제2권 · 제5장 · 경로당 냉장고와 사구식당 주방, 그 손끝의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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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안투데이 경기하남

취재를 다니다 보면 유독 오래 서 있게 되는 골목이 있습니다. 서울 변두리의 한 경로당 앞이었습니다. 문 앞에 나란히 놓인 신발 여남은 켤레, 그 안에서 두런두런 새어 나오던 웃음소리. 저는 그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이 나라가 노인을 대하는 방식이 결국 이 작은 신발장 안에 다 들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은 그 골목에서 시작해, 바다 건너 중국의 어느 사구식당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실버 브릿지 주제 이미지

제가 만난 어르신들은 경로당을 그저 ‘쉬는 곳’이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어느 할머니는 “여기 안 오면 하루가 안 넘어가”라고 하셨고, 어느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서로의 혈압을 재주는 일을 거르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정부가 지어준 것이 아니라 마을 어르신들이 스스로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공간이라는 점이, 저는 이 나라 노년 문화의 가장 정직한 얼굴이라고 느꼈습니다.

숫자로도 그 규모는 만만치 않습니다. 2023년 기준 한국의 노인 여가복지시설은 총 70,455개소, 이 중 경로당이 68,792곳으로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편의점이 전국에 약 5만 5천 곳이라 하니, 경로당이 그보다 더 많다는 사실을 저는 취재하며 처음 알고 조금 놀랐습니다. 반면 중국은 60세 이상 인구가 3억 1천만 명, 전체의 22%에 달하며 세계 최다 고령 인구 국가로 올라섰습니다. 이들은 ‘9073 모델’이라는 국가 표준 아래 90%는 가정에서, 7%는 커뮤니티에서, 3%만 시설에서 돌봄을 받도록 설계해두었고,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양로 서비스에 5,600억 위안, 우리 돈으로 약 77조 9천억 원을 쏟아부었습니다.

실버 브릿지 데이터 그래프

제가 흥미롭게 본 것은 두 나라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경로당은 정부 설계 없이 자생적으로 자라난 반면, 중국은 현·향·촌 3단계 행정단위마다 돌봄센터를 세우고 걸어서 15분 안에 식사와 의료, 목욕 보조까지 받을 수 있게 하는 ’15분 돌봄권’을 국정 과제로 못 박았습니다. 길림성 한 곳만 해도 2023년 1억 위안을 들여 사구양로서비스센터 102곳과 노인식당 100곳을 새로 지었다고 하니, 그 속도감은 제가 취재하며 자주 느끼는 한국의 서두르지 않는 방식과는 결이 많이 다릅니다.

그런데 정작 제 마음에 오래 남은 것은 규모의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중국 민정부 관계자가 남긴 한 문장이었습니다. “좋은 양로 서비스란 노인이 집 문을 나서지 않아도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집 문을 나서면 이웃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을 곱씹어보면, 한국의 경로당은 ‘문을 나서면 이웃을 만나는’ 쪽에서는 여전히 강하지만, ‘문을 나서지 않아도 도움받는’ 재가돌봄 영역에서는 이제 막 걸음을 뗀 정도입니다. 반대로 중국은 국가 시스템으로 돌봄은 빠르게 갖췄지만, 이웃끼리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문화는 아직 여물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 만남과 통계를 나란히 두고 곱씹은 이유는, 어느 쪽이 더 우월한지를 가리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한국은 ‘사람’이 강하고 중국은 ‘시스템’이 강하다는 것,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중국 일부 도시는 한국의 경로당을 참고한 ‘사구객청’ 프로젝트를 시범 운영하고 있고, 한국의 몇몇 지자체는 중국의 사구식당을 벤치마킹한 ‘동네부엌’ 사업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저는 두 나라가 이미 서로를 조금씩 곁눈질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2025년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20.3%를 넘기며 초고령사회에 들어섰습니다. 이에 맞춰 정부는 지역사회 통합돌봄법을 제정하고, 229개 지자체 가운데 57%가 참여하는 커뮤니티케어 시범사업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2024년 4월까지 참여자 10,961명 가운데 76.1%가 통합돌봄 계획을 세웠다는 수치를 보며, 저는 이것이 경로당이라는 오래된 자산 위에 새로운 서비스를 얹어가는 과정이라고 느꼈습니다. 다만 경로당 이용률이 2008년 54.9%에서 2023년 26.5%로 떨어졌다는 사실도 함께 짚어야 합니다.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경로당이 낯설게 느껴지는 지금, 이 오래된 공간을 어떻게 다시 채울지가 우리 세대의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제가 실버 브릿지를 쓰며 다시 펼쳐본 취재 수첩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경로당 총무 할머니가 냉장고 문을 열며 말했다. 반찬은 늘 부족했던 적이 없다. 누군가는 꼭 김치를 담가 왔고, 누군가는 꼭 나물을 무쳐 왔다.” 이 짧은 메모를 다시 읽으며 저는, 돈으로는 설계할 수 없는 종류의 돌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중국 사구식당에서 만난 한 조리사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국가가 주방을 지어줬지만, 매일 아침 무슨 반찬을 낼지는 결국 우리끼리 정한다.” 시스템이 자리를 깔아주어도,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결국 이웃의 손이라는 사실을, 저는 두 나라를 오가며 거듭 확인했습니다.

통계도 이 정서를 뒷받침합니다. 한국의 65세 이상 1인 가구는 2023년 기준 약 205만 가구로 전체 노인 가구의 36%를 넘어섰고, 중국은 자녀 없이 부부만 혹은 혼자 거주하는 ‘공소가정’ 노인이 1억 명을 넘는다는 조사가 있습니다. 두 나라 모두 ‘혼자 사는 노년’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에서는 처지가 같지만, 그 외로움을 메우는 방식은 다시 갈립니다. 한국은 경로당이라는 물리적 사랑방이, 중국은 사구양로서비스센터라는 행정 인프라가 그 빈자리를 채우려 애쓰고 있습니다. 저는 이 취재를 하며, 어느 모델이 더 옳다기보다 각자의 토양에서 자라난 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혼자 사는 이웃 어르신의 하루에 어떤 방식으로 곁을 내어주시겠습니까.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동네 경로당은 지금 문이 열려 있습니까, 닫혀 있습니까. 그리고 그 문턱을 낮추는 일에, 우리는 이웃으로서 무엇을 더 보탤 수 있을까요. 저는 답을 정해두고 묻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궁금해서 묻습니다. 한중 양국 노인들의 웃음이 이 실버 브릿지를 통해 서로에게 조금씩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 이야기를 여기서 매듭짓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그들의 하루」 제5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도서 상세 페이지: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2-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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