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였습니다.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 한 분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참을 서 계셨습니다. 엘리베이터는 분명 있었지만 고장 안내문이 붙어 있었고, 결국 할머니는 역무원의 부축을 받아 계단 옆 경사로로 돌아가셨습니다. 그 뒷모습을 보며 저는 제가 취재해 온 숫자들을 떠올렸습니다. 서울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 99.7%. 완벽에 가까운 그 수치와, 눈앞의 5분 남짓한 기다림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훨씬 멀었습니다.
이번 「실버 브릿지」 제7장 「무장애 시설: 이상과 현실」을 쓰면서 저는 줄곧 그 간극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챕터에 적었듯이, “휠체어를 타고 거리를 나서거나, 지팡이에 의지해 지하철을 이용해 본 사람이라면 그 숫자와 현실 사이의 거리를 체감하게 됩니다.” 법과 제도는 분명 앞서 나가고 있는데, 정작 그 혜택을 매일 몸으로 받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하루하루가 시험대라는 사실이, 취재를 하면 할수록 마음에 걸렸습니다.

숫자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 이유가 보입니다. 2024년 기준 한국의 등록장애인은 263만 1천 명, 전체 인구의 5.1%이고 이 중 65세 이상 고령 장애인 비율은 54.3%에 달합니다. 장애와 노년이 사실상 겹쳐 있는 셈입니다. 한국의 BF(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제도는 2008년 도입 이후 누적 15,023건을 쌓았지만, 본 인증은 5,388건에 그치고 예비 인증이 9,635건으로 거의 두 배에 이릅니다. 인증을 따놓고도 실제 시공 단계에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현장이 적지 않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제 눈길을 붙든 숫자는 따로 있었습니다. 전국에서 운영 중인 키오스크 약 45만 대 가운데 장애인 접근성 인증을 받은 것은 고작 466대, 전체의 0.1%에도 못 미칩니다. 고령자가 교통약자의 61.3%, 973만 명을 차지하는 나라에서, 디지털 전환이 도리어 새로운 장벽이 되고 있는 셈입니다.
중국의 풍경은 또 다릅니다. 2023년 9월 시행된 <무장애환경건설법>은 시설 건설부터 정보 소통, 사회 서비스, 법적 책임까지 8개 장을 갖춘 야심찬 법입니다. 공공건물의 무장애 시설 설치율은 99.5%, 2019년부터 2023년까지 22만 개 노후 주거단지를 개조해 3,800만 주민이 혜택을 봤고 10만 8천 대의 엘리베이터가 새로 설치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취재 중 만난 중국 현지 관계자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노후 아파트에 엘리베이터를 놓으려 해도 저층과 고층 주민 간 비용 분담 합의가 안 돼 몇 년째 표류하는 단지가 부지기수라는 것입니다. 법이 아무리 완비되어도, 이웃 간의 합의 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이었습니다.

저는 이 두 나라의 사례를 나란히 놓고 보면서,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결국 같은 지점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은 인증 제도라는 ‘이상’은 촘촘히 만들어 놓았지만 예산과 사후 관리라는 ‘실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고, 중국은 법이라는 ‘이상’은 강력하게 세웠지만 주민 합의와 지역 격차라는 ‘현실’에 발이 묶여 있었습니다. 방식은 달라도 결국 같은 벽 앞에 서 있는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벽 앞에 실제로 서 있는 사람은 언제나 노년의, 혹은 몸이 불편한 이웃들이었습니다.
한국장애인개발원 장형석 원장이 챕터에서 남긴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무장애 환경은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인, 임산부, 어린이, 그리고 짐을 든 모든 사람을 위한 보편적 설계입니다. 진정한 무장애 사회는 특별한 배려가 아닌 당연한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 말을 취재 수첩에 옮겨 적으며, 우리가 무장애 시설을 여전히 ‘배려’라는 단어로 부르고 있는 한, 그 시설은 언제든 예산 삭감의 1순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연한 일상으로 여겨질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해지는 것이겠지요.
한국은 19.2%의 고령화율로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고, 중국도 60세 이상 인구가 2억 9천만 명에 이르는 만큼 이 문제는 어느 한쪽만의 과제가 아닙니다. 저상버스 도입률이 서울 77%, 전국 62% 목표(2026)에 머물러 있는 것도, 결국 도시와 농촌,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격차가 무장애 환경에도 그대로 새겨져 있다는 뜻입니다. 정책은 전국 단위로 세워지지만, 그 정책이 실제로 도달하는 속도는 지역마다 다르다는 것을 이번 취재를 하며 다시 확인했습니다.
여러분의 동네에는, 그리고 여러분이 다니는 그 익숙한 길에는 휠체어나 지팡이로도 막힘없이 다닐 수 있는 구간이 얼마나 될까요. 저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도 자주 던집니다. 매일 지나치는 그 계단 하나, 그 키오스크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일정을 다시 짜야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잊고 사는지요. 숫자로 완성된 무장애 사회가 아니라, 몸으로 체감되는 무장애 사회를 만드는 일은 결국 이런 작은 알아차림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그들의 하루」 제7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한중 양국의 무장애 시설 현장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으신 분들은 도서 상세 페이지(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2-kr/)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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