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저는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일흔셋 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인터뷰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더니, 할머니는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 화면을 손끝으로 톡톡 넘기고 계셨습니다. “이거 로켓배송이라 내일 아침이면 온다니까.” 화면에는 홍삼과 유산균 제품이 담긴 장바구니가 떠 있었습니다. 제가 취재 노트를 펼치기도 전에 이미 주문은 끝나 있었지요. 그 순간 저는 이번 장의 제목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알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는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전엔 딸이 대신 시켜줬는데, 이젠 내가 직접 해. 어렵지 않더라고.” 이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책의 한 구절을 빌리자면, “‘노인은 디지털에 약하다’는 고정관념은 이제 완전히 깨졌다”는 문장이 바로 이 할머니의 거실에서 실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손끝 하나로 세상과 연결되는 그 모습은, 제가 그동안 취재하며 막연히 짐작만 했던 변화를 구체적인 장면으로 바꿔주었습니다.
숫자로 보면 이 변화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한국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전체의 20.3%, 약 1,050만 명에 달합니다. 그중에서도 60~64세 연령대의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5년 전보다 141.7% 폭증했고, 거래 건수도 65.4% 늘었습니다. 50대 이상의 온라인 소비액은 연간 1조 원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제가 만난 할머니 한 분의 장바구니가, 사실은 거대한 통계 곡선의 한 점이었던 셈입니다.
같은 무렵 저는 베이징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은퇴한 초등학교 교사였던 한 여성분은 손자와 나란히 앉아 핀둬둬(拼多多)의 ‘장배핀단(长辈拼团)’이라는 공동구매 기능을 쓰고 계셨습니다. 손자가 링크를 보내면 할머니가 클릭 한 번으로 참여하는 구조였는데, “손자가 골라주는 물건이라 믿고 산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중국에서는 60세 이상 인터넷 이용자가 1억 6,100만 명을 넘었고, 그중 69.8%가 온라인쇼핑을 일상적으로 이용한다고 합니다. 한국이 쿠팡의 로켓배송과 라이브커머스로 시니어를 끌어들였다면, 중국은 가족 간 신뢰 네트워크와 더우인의 ‘실버 KOL’ 라이브 방송으로 문을 열었다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제가 이 두 만남에서 느낀 것은, 온라인쇼핑이 단순한 소비 행위가 아니라 세대 간 관계를 다시 짜는 도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강남 할머니에게 로켓배송은 ‘더 이상 자식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되는 자립’이었고, 베이징 할머니에게 공동구매는 ‘손자와 나누는 새로운 대화’였습니다. 같은 온라인쇼핑이라도 두 나라에서 그것이 갖는 의미는 조금씩 다르게 읽혔습니다.
이 흐름은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국가적 흐름이 되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른바 ‘은발경제(银发经济)’ 시장 규모가 2024년 기준 약 7조 위안, GDP의 6%에 이르며 2035년에는 30조 위안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중국 국무원은 2024년 「은발경제 발전에 관한 의견」을 통해 26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주요 앱에 고령자 친화 모드인 ‘적로화(适老化)’ 도입을 의무화했습니다. 한국도 2020년부터 ‘디지털 포용 추진 계획’을 이어오고 있지만, 국가인권위원회가 2024년 보고서에서 여전히 고령자 디지털 격차 해소를 촉구했을 만큼 갈 길이 남아 있습니다.
다만 이 변화가 밝은 면만 지닌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2024년 한 해 사이버 사기가 20만 8,920건 발생해 피해액이 3조 4,000억 원에 달했는데, 60세 이상이 암호화폐 사기 피해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은퇴 자금을 지닌 어르신들이 디지털 금융에 아직 익숙하지 않아 오히려 표적이 되는 것이지요. 한국 70세 이상 중 스마트폰을 ‘일상 필수품’으로 여기는 비율이 14.4%에 불과하다는 수치를 볼 때마다, 저는 강남 할머니처럼 능숙하게 화면을 넘기는 분들 뒤편에 아직 화면 앞에서 머뭇거리는 훨씬 많은 어르신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취재를 이어가던 중 저는 서울 종로의 한 주민센터에서 열리는 ‘어르신 스마트폰 교실’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책에는 그날의 풍경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여든 살 어르신이 돋보기를 쓰고 장바구니 아이콘을 처음 눌러보던 순간, 강사도 학생도 함께 박수를 쳤다.” 저는 그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며, 기술이 세대를 가르는 벽이 아니라 다시 이어붙이는 다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강사로 나선 이는 다름 아닌 동네 청년이었고, 어르신들은 그를 “우리 선생님”이라 불렀습니다.
중국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정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중국 노령과학연구센터에 따르면 60세 이상 인구는 2035년 4억 명을 넘어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이를 전망이며, 베이징·상하이 등 주요 도시는 지역사회 단위로 ‘노년대학(老年大学) 디지털반’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교실이 관 주도의 평생교육 형태로 자리 잡았다면, 중국의 교실은 손자 세대의 자원봉사와 지역 커뮤니티가 결합된 형태로 퍼져가고 있다는 점에서, 저는 두 나라가 같은 목적지를 서로 다른 길로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장을 쓰며 독자 여러분께 묻고 싶었습니다. 우리 곁의 부모님, 혹은 우리 자신은 10년 뒤 어떤 방식으로 장바구니를 채우고 있을까요. 편리함을 얻은 만큼 경계할 것은 무엇이고, 자녀 세대가 먼저 건네야 할 손길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오늘 저녁, 우리는 부모님께 스마트폰 사용법을 여쭤본 적이 있는지, 아니면 대신 눌러드리기만 하지는 않았는지도 함께 물어보고 싶습니다. 정답을 내리기보다는, 이 질문을 함께 품고 사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돈과 관계」 제6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 시니어들이 스마트폰 하나로 그려낸 소비의 지형도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으신 분들께, 이 책을 권해 드립니다. 도서 상세 페이지: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3-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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