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서울 강북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만난 일흔셋 어르신은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들한테 생활비 얘기 꺼내느니 그냥 안 먹고 말지.” 국민연금으로 매달 받는 돈은 육십만 원 남짓, 병원비를 빼고 나면 밥 한 끼가 아쉬운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르신은 자녀에게 부양비를 청구할 생각은 아예 접어두고 계셨습니다. “그게 법으로 되는 건 아는데, 그렇게까지 하면 자식이랑은 끝이지.” 저는 그 말을 듣고 오래도록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한국 민법 제974조는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 간에는 서로 부양의 의무가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조문만 보면 든든해 보이지만, 정작 그 조항에는 얼마를, 어떻게 부양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없습니다. 불이행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도 없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부양료를 받으려면 결국 소송을 해야 하는데, 그 어르신의 말처럼 “자식을 고소하는” 심리적 문턱 앞에서 대부분은 그냥 물러섭니다. 법은 있으나, 그 법을 쓸 수 있는 부모는 거의 없는 셈입니다.
제가 취재하며 마주한 숫자들은 이 침묵의 배경을 설명해 줍니다. 2024년 여론조사에서 “부모 부양이 자녀의 책임”이라고 답한 한국인은 20.6%에 불과했습니다. 10년 전인 2010년의 56.1%에서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것입니다. 반대로 “자녀의 책임이 아니다”라는 응답은 47.6%로 두 배 넘게 늘었습니다. 실제로 부모에게 생활비를 지급하는 자녀 비율도 2016년 46.6%에서 2022년 38.7%로 꾸준히 낮아지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한국의 66세 이상 노인 소득빈곤율은 39.7%까지 치솟아 OECD 평균 14.8%의 약 세 배에 이르렀습니다. 76세 이상만 떼어보면 그 수치는 52%까지 올라갑니다. 마음이 멀어지는 속도와 지갑이 얇아지는 속도가 나란히 가고 있었습니다.
같은 취재로 베이징 외곽을 찾았을 때, 저는 정반대의 풍경을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한 독생자녀 부부는 매달 소득의 20%를 부모 두 분께, 또 다른 20%를 배우자 쪽 부모께 자동이체하고 있었습니다. “법이 그렇게 정해놨으니까요.” 부부는 담담히 말했지만, 그 담담함 속에는 4-2-1 구조—독생자녀 한 명이 부모 두 명과 조부모 네 명을 짊어져야 하는 세대—의 무게가 그대로 배어 있었습니다. 중국의 《노인권익보장법》과 《민법전》 제1067조는 경제적 부양뿐 아니라 ‘정신적 위안’까지 법으로 못 박아, 부모를 “자주 찾아뵙지 않는 것(常回家看看 위반)”조차 법원이 정기 방문을 명령한 판례가 실제로 있습니다. 2024년 중국 최고인민법원이 공개한 전형 사례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이 두 장면을 나란히 놓고서야 비로소 이 챕터를 왜 써야 했는지 알았습니다. 한국은 마음이 빠져나간 자리에 제도가 채워지지 못한 나라이고, 중국은 마음을 법으로 채우려다 형식만 남는 위험을 안은 나라였습니다. 실제로 중국에서도 “월급의 20%는 꼬박꼬박 보내지만 전화 한 통 없는” 이른바 ‘돈만 주는 효도’가 늘고 있다는 증언을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법이 강제할 수 있는 것은 송금이지, 그리움이나 안부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 격차는 결국 인구 구조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노년부양비는 2010년 15.0에서 2025년 약 30.0으로 15년 만에 두 배가 됐고, 통계청은 2058년이면 총부양비가 100을 넘어 사실상 ‘1:1 부양사회’가 될 것으로 내다봅니다. 중국의 노년부양비는 2023년 기준 22.5로 한국보다 낮지만, 추세선을 보면 2030년 이후 한국이 중국을 완전히 추월합니다. 정부가 2021년부터 생계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있는 것도, 가족이 감당하지 못하게 된 부양을 사회가 나눠 지겠다는 신호입니다. 실제로 “가족·정부·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응답은 64.7%로 압도적이었습니다. 부양의 주어가 ‘자녀’에서 ‘우리 모두’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중국에서도 60~70대 자녀가 80~90대 ‘노노인(老老人)’ 부모를 돌보는 이른바 ‘소로인(小老人)’ 현상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녀 자신도 이미 고령자인데 그 위의 초고령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이중 부담—이것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한국의 자녀 세대가 십 년 안에 마주할 풍경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 예고편을 베이징에서 미리 본 셈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질문을 독자 여러분께 그대로 옮겨 드리고 싶습니다. 부모를 부양할 마음은 있지만 형편이 없는 자녀와, 형편은 되지만 연락을 끊은 자녀 중 법은 어느 쪽을 벌해야 할까요. 그리고 그 물음에 앞서, 우리는 부양을 여전히 ‘효도’라는 이름의 개인 도덕으로만 남겨둘 것인지, 아니면 연금과 장기요양, 지역사회 돌봄으로 나눠 짊어질 것인지—그 선택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시점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으로 강제하는 효도든, 제도로 뒷받침하는 부양이든, 결국 그 중심에는 누군가의 늙은 부모와 지친 자녀가 있다는 사실만은 두 나라 모두 같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돈과 관계」 제7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서울과 베이징에서 만난 더 많은 가족들의 이야기, 그리고 두 나라의 법 조문과 판례를 함께 싣고자 했습니다. 도서 상세 페이지: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3-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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