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브릿지] 제5권 · 제1장 · 제가 만난 베이징의 리씨, 넉 달 만에 정년을 바꾼 나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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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안투데이 경기하남

저는 지난해 말, 이 원고를 쓰기 위해 자료를 뒤적이다가 날짜 하나에 눈이 멈췄습니다. 2025년 1월 1일. 중국이 70년 만에 법정 퇴직연령을 바꾼 날입니다. 그리고 정확히 같은 시기, 제가 취재차 들렀던 서울의 한 노사정 토론회 현장에서는 마이크를 든 사람들이 여전히 같은 문장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너무 늦다”, “그건 너무 이르다”. 같은 겨울, 두 나라의 시계는 이렇게 다르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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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결정 과정을 취재 자료로 훑으면서 저는 그 속도에 여러 번 놀랐습니다. 2024년 9월 13일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가 ‘법정 정년의 단계적 연기에 관한 결정’을 통과시켰고, 채 넉 달이 지나지 않아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남성 근로자는 4개월마다 1개월씩, 여성 생산직은 2개월마다 1개월씩 늦춰지는 방식으로, 15년에 걸쳐 남성은 60세에서 63세로, 여성 생산직은 50세에서 55세로 옮겨갑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결정하면, 바로 움직인다.”

같은 시기 한국의 숫자를 나란히 놓아 보면 이 대비는 더 또렷해집니다. 한국의 법정정년은 2016년부터 60세에 고정된 채입니다. 국민연금 수급개시연령은 1969년 이후 출생자 기준 65세여서, 그 사이 5년의 ‘소득 크레바스’가 방치되어 있습니다. 이 공백은 통계로도 드러납니다. 한국 66세 이상 은퇴연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39.7%로 OECD 1위입니다. 반면 중국은 60세 이상 인구가 약 3억 명, 세계에서 가장 큰 고령 인구를 안고서도 기본양로보험 기금의 지역별 고갈이 임박하자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며 결단을 앞당겼습니다.

제가 특히 눈여겨본 대목은 중국의 ‘탄력적 퇴직(彈性退休)’ 제도였습니다. 최저 납부연한을 채운 근로자는 법정 퇴직연령보다 최대 3년 앞당겨 그만둘 수도, 회사와 합의해 최대 3년 더 일할 수도 있습니다. 개인의 건강과 형편에 따라 문을 양쪽으로 열어둔 셈입니다. 반면 한국의 논의는 아직 ‘몇 세로 일괄 고정할 것인가’라는 틀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민주당이 완성 시점을 2036년·2039년·2041년으로 나눈 세 가지 안을 노사에 내놓았지만, 노동계는 늦다고, 경영계는 부담이 크다고 맞서면서 2025년 정기국회는 결국 입법 없이 마무리됐습니다.

이 두 풍경을 나란히 보며 제가 새삼 깨달은 것은, 속도의 차이가 단순히 정치체제의 차이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중국은 상명하달의 결정 구조 덕에 전인대 결정에서 국무원 시행세칙, 인력자원사회보장부 실무지침까지 하향식으로 빠르게 이어집니다. 한국은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호봉제와 퇴직금 제도가 정년연장을 곧바로 인건비 문제로 바꿔버리기 때문에, 노사정 삼자 협상과 공청회, 입법 예고를 거치는 동안 시간이 훌쩍 흘러갑니다. 어느 쪽이 옳다기보다, 각자의 제도가 만들어낸 속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느림’을 그저 신중함으로만 해석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정년 60세와 연금 수급 65세 사이의 5년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기다림이 아니라 소득이 끊긴 채 버텨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66세 이상 빈곤율 39.7%라는 숫자 뒤에는, 제가 취재 현장에서 만났던 것과 비슷한 얼굴들이 있을 것입니다. 정년을 채우고도 다음 5년을 무엇으로 메울지 답을 찾지 못한 사람들 말입니다. 느림이 방치로 이어질 때, 그것은 더 이상 신중함이라 부르기 어렵습니다.

취재 노트를 다시 펼쳐보면, 베이징 외곽의 한 커뮤니티 센터에서 만난 63세 자원봉사자 리씨의 말이 유독 눈에 띕니다. 그는 정년이 늦춰진 것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더 일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기보다, 더 일해야 해서 다행입니다.” 처음 이 말은 체념처럼 들렸지만, 그의 표정에는 오히려 안도가 있었습니다. 연금만으로는 손자의 학비도, 본인의 병원비도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3년 더 일할 수 있는 문이 열린 것 자체가 그에게는 숨통이었던 셈입니다.

고용의 질을 나란히 놓아 봐도 이 대비는 뚜렷합니다. 한국의 65세 이상 고용률은 OECD 평균을 웃도는 수준이지만, 그 상당수가 폐지 수거나 단순 경비 같은 불안정 일자리에 몰려 있다는 점을 저는 취재 현장에서 거듭 확인했습니다. 중국은 탄력적 퇴직 제도를 도입하며 동시에 숙련 근로자가 원래 업종에서 파트타임으로 남을 수 있는 재고용 경로를 함께 설계했습니다. 일자리의 ‘양’이 아니라 ‘질’까지 함께 설계했다는 점에서, 저는 이 부분이야말로 한국이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라면 리씨처럼 일흔을 향해 가는 나이에도 “더 일해야 해서 다행”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더 일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 말하고 싶으신가요. 저는 이 질문에 정답이 없다는 것을 취재를 마치고서야 알았습니다. 다만 그 답을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사회의 설계가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한국 사회는 지금 초고령사회 진입(65세 이상 1,051만 명, 20.3%)이라는 인구 구조의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정년연장은 결국 청년 고용, 연금 재정, 기업 인건비라는 세 축이 함께 얽힌 문제여서 어느 한쪽만 서둘러서는 풀리지 않습니다. 중국이 지금 겪고 있는 세대 갈등—청년층 사이의 “정년연장이 내 일자리를 줄인다”는 반발—역시 한국이 먼저 살펴봐야 할 예고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독자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중국의 속도에서 무엇을 배우고, 우리의 합의 전통에서 무엇을 지켜야 할까요. 노사정이 시간을 들여 합의에 이르는 문화는 한번 정해지면 실행 저항이 적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그 시간이 5년의 공백을 방치하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중국이 2025년부터 실시간으로 치르고 있는 이 실험을 지켜보는 지금이, 어쩌면 한국형 설계를 더 정교하게 다듬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함께 늙어가는 법」 제1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5-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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