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11] 남쪽 창가의 두루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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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안투데이 경기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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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11] 남쪽 창가의 두루마리

4월 · 다 버린 밤 | 약 3분 읽기삼국지 365 · Day 111 · Book 1 「별이 모이다」

삼국지 365 Day 111 헤더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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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등(馬騰)의 이름이 두루마리에 올라간 이튿날 저녁, 조조(曹操)는 남쪽 창가에 앉아 있었다. 승상부 서쪽의 촛불은 이미 꺼져 있었다. 남쪽 창 하나만 열려 있었고, 그 열린 틈 사이로 늦여름의 저녁 바람이 조용히 방 안을 지나갔다. 바람의 끝이 책상 위 두루마리 귀퉁이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책상 위에는 형주(荊州)의 전도(全圖)가 펼쳐져 있었다. 양양(襄陽)을 중심으로 북쪽의 남양(南陽)·번성(樊城), 남쪽의 강릉(江陵)·공안(公安), 동쪽의 하구(夏口)·강하(江夏), 서쪽의 의도(宜都)·자귀(秭歸)까지, 한 폭 안에 형주의 아홉 군(郡)이 모두 들어와 있었다. 지도는 순욱(荀彧)이 이틀 전 병부(兵部)의 서고에서 꺼내 온 것이었다.

조조는 지도의 한가운데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양양(襄陽). 거기에 형주 자사(刺史) 유표(劉表)가 여덟 해째 앉아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사람이었다.

남쪽의 작은 점 하나에, 조조의 시선이 다시 머물렀다. 양양에서 서북쪽으로 한 치쯤 올라간 자리였다. 거기에, 신야(新野)라는 두 글자가 있었다.

그 두 글자 위에 조조는 손가락을 올렸다. 손가락이 한참 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어제 유비(劉備)의 이름에 동그라미를 둘렀을 때와 같은 손가락이었다.

"문약(文若). 이 신야(新野)라는 자리는, 얼마나 된 자리인가."

순욱이 지도 옆에서 고개를 숙였다.

"형주 북쪽의 작은 현(縣)이옵니다. 방어선의 맨 앞쪽이지요. 유표가, 유비를 그 자리에 두었다는 소문이 건안 6년(201년) 무렵부터 전해져 왔으니, 이제 여섯 해쯤 되었을 것이옵니다."

"여섯 해라…"

조조가 짧게 되뇌었다.

그는 다시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유비가 여섯 해 동안 신야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섯 해는, 사람이 자기의 밭을 갈고, 자기의 지붕을 고치고, 자기의 이름을 잊어 버릴 만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조조는 유비가 그의 이름을 잊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더 깊게 알고 있었다.

"봉효(奉孝)는, 유비에 대하여, 평생 가볍게 여기지 말라 했네."

"그 말을, 오늘 두 번째로 들려 주시는 것이옵니다."

"지금 신야의 이 자리에서, 유비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네.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하고 있네."

순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안쪽에서, 한 사람이 그 자신의 박자를, 조용히 가다듬고 있을 수 있사옵니다."

삼국지 365 Day 111 중간 일러스트

조조는 지도 위에서 눈을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름의 끝 무렵이었다. 마당의 배롱나무 꽃이 한 잎씩 떨어지고 있었다. 그 꽃잎 아래에서, 조조는 봉효의 자리를 다시 느꼈다. 봉효가 살아 있었다면 오늘 이 지도 위에, 신야의 점 옆에, 작게 무슨 글자를 하나 적어 두었을까. 조조는 한참 동안 그 글자를 생각했다.

결국 그는 붓을 들었다. 신야의 두 글자 옆에, 작게, 한 줄을 덧썼다.

慢起(천천히 일어난다)

그 세 글자를 읽었다. 천천히 일어난다. 유비가 언젠가 천천히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이 아니었다., 유비의 일어남은 천천히일 것이라는, 한 결의 결론이었다.

"봉효가 오늘 여기에 있었다면, 이 세 글자가, 여기에 있었을 것이로군."

순욱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조는 지도의 남쪽 끝, 강동(江東)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스물다섯의 손권(孫權)이 앉아 있는 자리였다. 주유(周瑜)가 그 옆에서, 이제 서른셋이 되어 있었다. 조조는 두 사람의 이름 위에도 손가락을 올렸다. 올렸다가, 다시 떼었다.

"봉효는, 주유가 있는 동안에는 강을 건너지 말라 했네."

"오늘도 그 말을, 무겁게 받아두시옵소서."

조조가 두루마리를, 형주 지도를, 천천히 말았다.

남쪽 창가에 저녁이 깊어 가고 있었다.

허도의 하늘이 조금씩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 붉은 하늘 아래, 지도는 이미 말려 있었다. 다만 조조의 머릿속에서, 양양·신야·강하·강릉·공안·의도·자귀의, 형주의 한 폭이, 오늘 밤 내내 말려지지 않을 모양이었다.

한 해 뒤의 한 결이, 오늘 저녁 허도의 남쪽 창가에서, 아주 천천히 본인의 자리를 고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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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365 Day 111 마무리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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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역가의 한 마디 — 연삼흠 박사스스로의 지도 위에 한 사람의 이름을 적어 두고, 그 이름 옆에 "천천히 일어난다" 세 글자를 덧써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그 세 글자는, 그 사람을 얕잡아 보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어느 날 일어날 때, 그 일어남이 얼마나 깊을지를, 먼저 알아차린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세 글자이지요. 오늘 당신 곁에도, "천천히 일어난다"고 적어 두고 싶은 이름이 혹시 있으신지요. 그 이름 옆에 세 글자를 적어 두는 저녁은, 그 사람을 평가하는 저녁이 아니옵니다. 그 사람이 언젠가 일어날 저녁을, 당신이 먼저 상상해 두는 저녁이옵니다. 상상은, 준비의 가장 앞에 놓이는 자리이지요.

📅 내일 Day 112: 양양에서 온 사람

"형주 지도가 책상 위에 말려 있던 그 밤, 한 사람이 남쪽에서 올라왔다. 양양(襄陽)에서 온 사람의 두 손에는, 한 장의 초대장이 들려 있었다." — 연삼흠 박사평역 — 연삼흠 평역가 · Sam H. Yeon, Ph.D. · 延三欽博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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