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브릿지] 제5권 · 제20장 · 예순둘, 다시 시작합니다: 구로와 상하이의 창업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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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안투데이 경기하남

구로의 좁은 골목, 공사가 절반쯤 끝난 가게 앞에서 김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 저는 솔직히 조금 걱정스러웠습니다. 정년퇴직 통보를 받고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은 62세의 얼굴에서, 두려움보다 설렘이 먼저 읽혔기 때문입니다. “이제 뭘 하지”라는 질문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멈춰 서는데, 이분은 이미 공유주방 설계도를 손에 들고 계셨습니다. 그 손끝의 떨림이 나이 때문인지 긴장 때문인지, 저는 한참을 지켜보고서야 알았습니다. 둘 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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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위해 상하이 푸둥의 한 사무실을 다시 찾았을 때, 그곳에서도 똑같은 떨림을 봤습니다. 66세의 장(张) 사장님은 양로 스타트업 사업계획서를 밤늦도록 고치고 계셨고, 제가 인터뷰를 청하자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我不是在创业,是在重新活一次” — 저는 창업하는 게 아니라, 다시 한번 살아보는 겁니다. 시계를 멈출 수는 없지만 시계가 가리키는 방향은 내가 정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을, 저는 취재수첩 맨 앞장에 옮겨 적었습니다. 구로의 김 선생님도, 푸둥의 장 사장님도,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같은 문장을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꿈은 늙지 않는다.”

이 만남들이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라는 걸, 저는 숫자를 들여다보며 다시 확인했습니다. 2025년 8월 기준 한국 신규 창업자 중 60세 이상 비중은 15.3%까지 올라왔고, 50대(21.6%)를 더하면 시니어가 전체 창업의 36.9%를 차지합니다. 30대(24.6%)나 40대(25.2%)보다 큰 몫입니다. 1인 창조기업 116만 개의 대표자 평균 나이는 55세, 그중 60대가 26.5%를 차지한다고 하니 사실상 시니어가 과반에 가깝습니다. 중국은 규모가 다릅니다. 2024년 한 해에만 실버경제 관련 기업 8만 2,400개가 새로 등록되어 역대 최고치를 찍었고, 2025년 2월 기준 누적 50만 2천 개에 이르렀습니다. 65세 이상 인구가 2억 2천만 명을 넘어선 나라에서, 은퇴 후 인생 2막은 개인의 선택을 넘어 산업의 기반이 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두 도시의 표정은 조금 달랐습니다. 구로의 김 선생님이 준비하는 건 외식·공유주방 업종으로, 한국 시니어 창업의 가장 흔한 갈래입니다. 반가운 소식만은 아니었습니다. 같은 시기 통계를 보면 60·70대 자영업은 폐업이 창업을 앞지르고 있었고, 그 간극이 가장 크게 벌어지는 연령대이기도 했습니다. 반면 푸둥의 장 사장님이 몸담은 실버경제는 위생·돌봄에서 문화·여행·교육·금융까지 다각화되어 있었고, 2025년에는 31개 성·시 중 24곳이 이 산업을 아예 지역 성장동력으로 지정해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꿈을 품었지만, 한 사람은 좁은 시장에서 홀로 버티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국가가 깔아준 길 위에서 걷고 있었습니다.

이 차이를 취재하며 저는 오래 생각했습니다. 두 분 다 “다시 시작한다”는 같은 결심에서 출발했는데, 왜 결과는 이렇게 갈릴 수 있는 걸까요. 제가 내린 잠정적인 답은 이렇습니다 — 창업의 절실함은 똑같아도, 그 절실함을 받아주는 구조가 다르면 같은 용기도 다른 운명을 맞는다는 것입니다. 김 선생님이 나쁜 선택을 한 게 아닙니다. 다만 30년의 경력을 상품으로 번역하기보다 익숙한 생계형 업종으로 향하게 만드는 구조 안에 계셨을 뿐입니다. 실제로 창업진흥원 자료를 보면 엔지니어 출신이 기술컨설팅으로, 교사 출신이 학습 플랫폼으로 전환한 경우처럼 자신의 경력 자체를 자산으로 삼은 창업자들의 생존율이 눈에 띄게 높았습니다.

이건 개인의 용기만으로 메울 수 없는, 세대와 인구구조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한국 직장인이 체감하는 퇴직 연령은 49.5세인데 기대수명은 83.6세에 이릅니다. 짧게는 20년, 길게는 30년이 넘는 시간을 국민연금만으로는 도저히 채울 수 없습니다. 60대 창업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배경에는 꿈만이 아니라 이 냉정한 산수가 있었습니다. 중국은 2035년까지 60세 이상 인구가 4억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2023년 국무원이 『실버경제 발전에 관한 의견』을 내놓으면서 노년층을 부양의 대상이 아니라 소비와 창업의 주체로 다시 정의했습니다. 두 나라 모두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었던 셈입니다. 더 이상 사회가 나를 부양하지 않는다면, 나는 사회에 무엇을 내어줄 수 있는가.

저는 이 챕터를 쓰면서 독자들께 묻고 싶어졌습니다. 은퇴가 아직 먼일이라고 느끼시든, 이미 그 문턱을 넘으셨든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쌓아온 무엇을, 남은 시간에 어떻게 다시 꺼내 쓸 수 있을까. 생계형 프랜차이즈에 퇴직금을 전부 쏟아붓는 대신, 작게 시작해서 반응을 확인하고 천천히 넓혀가는 길은 없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 길을 혼자 걷지 않아도 되는 방법은 없을까. 김 선생님과 장 사장님의 이야기를 나란히 놓고 보니, 저에게는 이 질문들이 국경을 넘어 서로 닮아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함께 늙어가는 법」 제20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구로의 좁은 골목과 상하이 푸둥의 사무실을 오가며 제가 직접 보고 들은 장면들, 그리고 한중 노년창업의 현실과 전략을 함께 실어두었습니다. 책의 상세한 내용은 위아북 페이지(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5-kr/)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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