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KOREAN TODAY
역사는 살아있다
신라 편
제2화: 삼성시대, 박·석·김 세 가문이 나눈 왕좌
한 가문이 천 년을 독점한 나라는 드물다. 그런데 신라는 건국 초기에 왕좌를 세 가문이 돌아가며 맡는 길을 택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그리는 신라 초기 왕실은 박씨, 석씨, 김씨로 이어진다. 학계는 이 시기를 흔히 ‘삼성시대’라 부른다. 박혁거세가 연 왕통은 석탈해에게, 다시 김알지의 후손에게로 넘어간다. 한 번 빼앗고 끝나는 쿠데타가 아니라 서로 얽히고 돌아오는 순환이었다.
왜 신라는 한 가문의 세습으로 곧장 가지 않았을까. 서로 다른 세력을 한 나라 안에 붙들어 두는 이 방식은 오늘의 연립정부나 권력 분점과 닮은 데가 있다.
◆ 시대의 풍경
전승에 따르면 신라의 출발은 기원전 57년이다. 경주 분지의 여섯 마을, 곧 사로6촌이 혁거세를 임금으로 추대하며 서라벌이 열렸다. 당시 한반도 남동부에는 진한 소국들이 흩어져 있었고, 서라벌은 그중 하나였다. 중국 대륙에서는 한(漢)이 동방 세계의 질서를 쥐고 있었다. 서라벌은 거대한 왕국이 아니라 여러 마을 세력이 모인 연맹체에 가까웠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박씨 왕이 이어지던 중 탈해가 서기 57년 왕위에 올랐다. 그는 동해 건너 다파나국 출신이라 전해지는 외부인으로, 남해왕의 사위가 되어 왕위를 이었다. 탈해 9년(65년)에는 시림(始林)에서 닭 울음소리와 함께 금궤가 발견되고, 그 속의 아이가 김알지로 전해진다. 이 숲은 훗날 계림(鷄林)이라 불렸고 신라의 별칭이 되었다. 석씨는 월성에, 김씨는 계림에 터를 잡았다는 해석이 학계에 있다. 알지의 후손 미추는 3세기 후반 김씨 최초의 왕이 되었다고 전한다.
“신라 왕으로서 거서간이라 한 이가 하나, 차차웅이라 한 이가 하나, 이사금이라 한 이가 열여섯, 마립간이라 한 이가 넷이다.”
◆ 같은 시대, 다른 세계
🏛️ 중국
전한이 이어지던 시기에 서라벌이 열렸고, 박·석·김 교체기의 대부분은 후한과 삼국(위·촉·오) 시대에 걸친다. 중국은 통일과 분열을 거듭했다.
🗿 유럽/중동
로마는 공화정을 끝내고 제정으로 넘어갔다. 5현제의 번영과 3세기의 위기가 이어졌으며, 황제 선출은 군대와 원로원이 좌우했다.
🌏 기타 지역
일본 열도는 야요이 시대의 소국 단계였고, 인도에서는 쿠샨 제국이 교역로를 장악했다.
[이미지: 박·석·김 3성의 왕위 교대 흐름 (기원전 57년~356년 무렵)]
⚔️ 그날의 현장
“이른 새벽, 시림에 안개가 깔렸다. 숲 속 나뭇가지에 금빛 궤짝이 걸려 있고 흰 닭이 목청껏 울었다. 소식을 들은 왕이 서둘러 숲에 들어섰다.”
“궤를 열자 어린 사내아이가 있었다. 왕은 아이를 품에 안고 알지라 이름 지었다. 숲은 곧 계림이라 불렸다. 이 아이가 자라 신라 왕실을 바꿀 가문의 뿌리가 될 줄은 그 자리의 누구도 몰랐다.” (《삼국사기》·《삼국유사》의 김알지 설화를 토대로 장면을 재구성함)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세 시조 설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박혁거세는 알에서, 김알지는 금궤에서, 석탈해는 궤짝에 실려 바다를 건너 나타난다. 박은 하늘의 광명, 석은 바다 건너의 이주민, 김은 숲에서 나온 인물이라는 식으로 출신이 서로 다르다. 이는 서로 다른 집단이 신라에 편입되던 기억이 신화의 옷을 입고 남은 것으로 읽힌다.
왕위 교체에는 일정한 패턴도 있다. 새 가문은 앞선 왕실과 혼인으로 이어져 왕위를 얻었고, 한 대 뒤 옛 가문으로 돌아갔다가 몇 대 뒤 다시 복귀하는 모습이 반복된다. 탈해는 남해왕의 사위였고, 벌휴왕은 모계로 김씨와 이어지며 왕비 또한 김알지의 조카로 전한다. 이는 힘으로 갈아치운 교체라기보다 혼인으로 묶인 세력 연합 속에서의 순번에 가깝다.
이 연합의 바탕에는 6부(6촌) 체제가 있었다. 6촌장들이 모인 화백회의가 중요한 일을 합의로 결정했다고 전한다. 왕은 절대 군주가 아니라 6부 위에 선 대표에 가까웠다. 왕호도 이를 보여준다. 거서간·차차웅에서 연장자나 계승자를 뜻하는 이사금으로, 다시 큰 우두머리를 뜻하는 마립간으로 바뀌어 간다. 356년 즉위한 내물왕 이후 김씨가 왕위를 대대로 이어 갔다. 6부는 이후 왕경의 행정 기반으로 발전해 간다. 다음 편에서 이 전환점을 다룬다.
시대
기원전 1세기~4세기 중엽
핵심 인물
박혁거세·석탈해·김알지
핵심 사건
3성 교대, 시림의 금궤
영향
김씨 세습과 마립간 시대로
🔍 학계의 시각
주류 견해
여러 집단이 혼인으로 얽힌 연합 속에서 왕위를 번갈아 맡았고, 점차 김씨가 우위를 굳혔다고 본다. 삼국사기의 초기 연대는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입장이 많다.
대안적 견해
초기 왕계와 시조 설화 자체가 후대, 곧 신라 말~고려 초에 정리·윤색되었다고 본다. 실제로는 소국을 병합하는 과정이 왕통 교체로 기록되었을 가능성도 논의된다.
◆ 오늘 우리에게 묻다
삼성시대가 주는 교훈은 권력을 나누는 일이 곧 약함은 아니라는 점이다. 서로 다른 뿌리를 가진 세력이 한 틀 안에서 순번과 혼인으로 이해관계를 맞췄기에 신라는 작은 소국에서 출발해 연맹의 중심으로 자랄 수 있었다. 다만 한 가문이 힘을 독점하자 마립간 시대의 세습 왕권으로 넘어갔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분점은 안정을 주지만 오래 가려면 견제의 장치가 필요하다.
오늘의 연립정부, 다자 협의체, 기업의 공동대표 체제가 모두 같은 질문을 던진다. 누가 이기느냐보다 어떻게 함께 책임지느냐다. 6부 회의의 합의 문화는 다원적 리더십의 가장 오래된 한국적 실험이었다.
| 구분 | 신라 시대 | 현재 |
|---|---|---|
| 정치/안보 | 6부 합의와 3성 순번으로 연맹 유지 | 연립정부, 초당적 협의, 권력 분산 |
| 군사/외교 | 혼인과 소국 병합으로 세력 확장 | 동맹, 합작, 인수합병 |
| 문화/정신 | 시조 신화로 서로 다른 뿌리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음 | 다문화 사회와 공동체 서사 만들기 |
[이미지: 신라의 3성 순번과 현대의 권력 분점 비교]
📚 더 깊이 알아보기
- 경주 월성과 계림, 대릉원 일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에 포함된다. 시조 설화의 무대를 직접 걸어 볼 수 있다.
- 《삼국유사》는 상고(上古)를 22대 지증왕까지로 보며, 박씨 7명·석씨 8명·김씨 7명으로 구성된다고 정리한다.
- 김씨 왕계와 마립간 시기를 다룬 연구로 ‘신라 상대 왕위계승과 혼인 형태’ 같은 학위논문을 참고할 만하다.
살아있는 역사의 목소리
신라는 처음부터 하나의 가문이 아니라 여러 뿌리가 함께 세운 나라였다. 왕좌를 나누던 시간이 천 년 왕조의 기초 체력이 되었다.
“함께 나눌 줄 알았기에, 신라는 오래 설 수 있었다.”
이전 편
제1화: 박혁거세, 천년왕국의 씨앗을 뿌리다
다음 편
제3화: 내물왕 – 신라의 진정한 시작
코리안투데이 “역사는 살아있다” 시리즈
신라 편 (총 35편)
© 2025 The Korean Today. All rights reserved.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작성되었으며, 다양한 학술적 견해를 균형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코리안투데이(The Korean 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