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예나 Crimson Lake Red 작품에서 붉은색은 단순한 색채가 아니다. 최예나 작가는 붉음을 작품의 메인보드이자 브레인에 비유한다. 모든 기능과 감정, 기억이 그곳에서 연결되기 시작한다는 의미다. 그의 회화에서 Crimson은 혈액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감각하게 만드는 색이다. 생명과 죽음, 본능과 의식이 한 화면에서 충돌하고 다시 연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코리안투데이] 단종된 Holbein Crimson Lake Red에서 프로이트의 죽음 본능까지, 최예나 작가가 말하는 붉음과 포스트모더니즘 © 김현수 기자 |
최 작가는 붉은색을 “생명을 흐르게 하는 블러드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혈액의 이미지는 작품에서 생명의 유지뿐 아니라 감정과 기억을 새기는 장치로 확장된다. 관객이 화면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강렬한 붉음은 죽음이나 상처를 떠올리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그 연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을 연상시키는 색에서 생명의 시작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기존 인식을 뒤집는다.
이러한 관점은 최예나 Crimson Lake Red 연작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작가 측 설명에 따르면 이번 Limited Collection은 단종된 Holbein Crimson Lake Red 안료를 사용해 제작됐다. 최 작가는 이미 생산이 끝난 물감이지만 예술가의 손 안에서는 여전히 현재의 재료로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사라진 재료가 작품으로 남는 순간, 하나의 물감은 단순한 소모품을 넘어 기억과 기록의 일부가 된다는 것이다.
그가 비슷한 붉은색으로 대체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나의 안료에서 나타나는 짙음과 옅음, 무거움과 가벼움의 차이를 그대로 작품에 남기고 싶었다. 색의 농도와 질감에 따라 발생하는 감정 자체가 작가의 예술적 기질과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물감의 단종이라는 물질적 사건을 회화의 기록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 [코리안투데이] 단종된 Crimson Lake Red, 기억과 기록의 현대미술로 남다 © 김현수 기자 |
이전 작업과 Crimson Lake Red Limited Collection의 차이도 뚜렷하다. 최 작가는 기존 작품에서 기법과 형태를 중심으로 연구해 왔다고 말했다. 여러 색의 융화를 통해 화려함을 만들어내는 작업도 이어왔다. 그러나 이번 시리즈에서는 색의 사용을 의도적으로 줄였다. 단색에 가까운 붉음을 중심으로 인간의 본능과 본질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회화 표면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최 작가는 유화의 오일 배합을 이용해 무광, 반광, 유광의 경계를 조절했다고 설명했다. 빛과 관람 동선에 따라 작품의 표정이 달라지는 효과를 만들기 위한 선택이다. 철학적인 측면에서는 프로이트의 죽음 본능을 이전보다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이를 자신만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시각으로 해석했다.
프로이트의 죽음 본능은 최예나의 화면에서 “형태의 해체와 결속, 그리고 잔존”으로 시각화된다. 최 작가는 대학 시절 성격심리학과 범죄심리학을 접하면서 프로이트의 이론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죽음의 본능은 오히려 생존의 욕구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그 질문은 회화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양만기 교수와의 대화와 작업 연구를 거치며 퍼포먼스, 조형과 반조형, 영상, 회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질문을 확장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붉은색이 가진 죽음의 이미지를 자신의 방식으로 해체하고 다시 해석하는 방향에 도달했다. 죽음의 상징으로 소비되던 붉음을 생존과 생성의 색으로 전환하는 것이 작품의 중요한 축이 됐다.
![]() [코리안투데이] 단종된 Crimson Lake Red, 기억과 기록의 현대미술로 남다 ©김현수 기자 |
최 작가가 바라보는 죽음 역시 단순한 종결이 아니다. 그는 죽음을 “시작과 끝을 동시에 알리는 경종”이라고 표현했다. 혈연과 세대의 연결, 생명의 전달과 순환을 붉은색의 상징과 결합한다. 이 부분은 생물학적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과학 논문이 아니라, 생명의 계승을 회화적으로 해석하는 작가 개인의 상징 체계에 가깝다. 그는 피가 죽음만을 의미한다는 통념을 깨고, 생명의 역사 역시 붉은색으로 기억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작품에 담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태도는 작가의 성향과도 맞닿아 있다. 최 작가는 오래전부터 이미 정해진 규칙과 기준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이유에 의문을 품었다고 말했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규율과 관습에 질문을 던지고, 답을 작품 안에서 찾는 방식이다. 정해진 형태를 해체하고 다시 결속하는 작업 방식 역시 이러한 태도와 연결된다.
이번 전시에서 개인 소장 작품을 함께 공개한 이유도 자신의 출발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는 과거 파리로 향하는 공모전에 “이야기”라는 작품을 출품하며 금상을 받으면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하겠다는 마음을 품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다른 공모전에서 “태극아리랑”으로 다시 금상을 받았고, 두 작품을 자신의 출발을 알린 작업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번 첫 개인전에 이 작품들을 함께 선보인 것도 현재의 작업과 시작점을 연결하기 위해서다.
개인 소장 작품에는 최 작가가 오랫동안 연구해 온 이른바 “광기법”도 담겼다. 작가는 관람자의 이동과 빛의 방향에 따라 색감과 표면이 다르게 보이도록 연구해 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디지털 화면에서 느껴지는 RGB 계열의 강렬한 색감을 물감의 CMYK적 조합으로 구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태극아리랑”에서는 붉은 선혈과 한국 전통 문양을 오일 배합과 시간의 변화로 표현한 점을 자신의 주요 연구 성과로 꼽았다.
2026년 7월 베니스에서 진행된 전시 역시 이러한 작업 세계를 국제 관객에게 선보이는 자리였다. 작가 측 자료에 따르면 개인전은 7월 8일부터 10일까지, 이어지는 그룹전은 7월 11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됐다. Gallery Michelle이 관련 전시를 후원했다. 한편 La Biennale di Venezia 공식 자료에 따르면 제61회 국제미술전 Biennale Arte 2026 “In Minor Keys”는 2026년 5월 9일부터 11월 22일까지 베니스의 Giardini, Arsenale와 여러 장소에서 열렸다. 최 작가의 개별 전시 일정과 공식 비엔날레 본전 일정은 구분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 [코리안투데이] 프로이트의 죽음 본능, 붉음에서 생명과 재생을 발견하다 © 김현수 기자 |
해외 관객에게 무엇을 남기고 싶느냐는 질문에 최 작가는 “그로테스크한 붉음도 아름다울 수 있다”고 답했다. 죽음을 부정적인 것으로만 규정하는 시선에서 벗어나 생존과 시간의 시작에도 붉음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길 바란다는 의미다. 이 말은 최예나 Crimson Lake Red 연작이 향하는 지점을 압축한다. 죽음과 생명은 서로 반대편에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순환 속에서 연결된다는 것이다.
단종 안료가 모두 소진된 뒤에도 붉음은 계속된다. 최 작가는 앞으로 자신이 직접 배합한 Crimson 컬러를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붉음을 통해 “붉음 자체가 아름다울 수 있음”을 표현하고 싶다는 설명이다. 기존 Crimson Lake Red와의 결별이 새로운 작품 세계의 시작이 될지는 아직 고민 중이며, 답은 다음 작품을 통해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작가로 기억되기를 원하는지 묻자 짧은 문장이 돌아왔다.
“지독히도 크림슨의 붉음 자체였다.”
이어 국제 미술계에서 보여주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정리했다.
“RED 하면 떠오르는 붉음을 가지고 제대로 놀 줄 아는 포스트모더니즘 최예나 예술가가 여기 있다.”
붉음을 죽음으로만 읽는 시선을 해체하고, 그 안에서 생명과 본능, 기억과 시간을 다시 발견하려는 작업. 단종된 하나의 물감에서 시작된 최예나 Crimson Lake Red의 이야기는 결국 색을 통해 인간 존재를 질문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언어로 확장되고 있다.
[ 김현수 기자: [incheoneast@thekorean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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