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오늘] 1926년 9월 10일 – 스트레제만이 제네바 연단에 선 날, 경성은 검열 속에서 동포를 구하려 했다
1926년 9월 10일, 금요일. 경성 거리에 초가을 바람이 스몄다. 이날 동아일보 지면에는 유난히 무거운 글 한 편이 실렸다. 제목은 ‘참화에 죽어가는 동포를 위하야’. 이틀 전 신문사가 새로 꾸린 이재조선인구제회의 첫 목소리였다. 같은 시각 지구 반대편 제네바에서는 독일 대표가 국제연맹 총회 연단에 올라서고 있었다. 검열에 갇힌 목소리와, 세계 무대에 선 목소리가 같은 하루 안에 있었다.

그날의 경성
이틀 전인 9월 8일, 동아일보는 ‘이재조선인구제회’를 새로 꾸렸다. 일본에서 재해를 입은 동포들에게 보낼 구원금을 걷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9월 10일, 신문은 ‘참화에 죽어가는 동포를 위하야’라는 글을 내보내며 그 사정을 알렸다. 글은 이렇게 적었다. “다소 귀에 들리는 소식으로도 당국의 금지로 인하야 터지는 가슴을 부둥켜 안고 무릎 밑에 집어넣는 형편이라.” 3년 전 관동 지역을 뒤흔든 재해 때 조선인들이 겪은 참상은, 그 전모조차 여전히 신문에 실을 수 없었다. 검열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문은 구제회를 통해서라도 동포들의 손을 잡으려 했다.
같은 주, 경성지방법원 법정에도 비슷한 무게의 소식이 있었다. 8월 22일자 동아일보 칼럼 ‘횡설수설’을 쓴 기자 최원순은 보안법 위반으로, 편집 겸 발행인 김철중은 신문지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9월 8일 열린 공판에서 검사는 최원순에게 징역 8개월을, 김철중에게는 금고 6개월을 구형했다. 신문 한 줄을 놓고 기자와 발행인이 나란히 법정에 서는 일이, 이 무렵 경성에서는 낯설지 않았다.

경성과 한반도
동아일보의 구제 활동은 경성 본사에만 머물지 않았다. 전국 각지에 흩어진 지국과 분국이 함께 움직여야 성금이 모였다. 신문 한 부가 도착하는 곳마다 모금함도 함께 놓였다. 자세히 말할 수 없는 사정을 대신해, 신문은 독자들에게 그저 손을 보태 달라 호소한 셈이었다.
최원순·김철중의 재판 소식 역시 경성에만 머물지 않았다. 신문지법과 보안법으로 기자와 발행인을 옭아매는 일은 이 무렵 조선 각지의 다른 신문사에서도 되풀이되고 있었다. 불과 반년 전인 3월에는 동아일보 자체가 두 번째 무기정간을 당한 터였다.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의 경계를 놓고, 총독부와 신문사들의 줄다리기는 전국 어디서나 이어지고 있었다.

그날의 세계
이날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국제연맹 총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틀 전 상임이사국 자리를 얻은 독일 대표단은 이날 총회 연단에 올랐다. 외무장관 구스타프 슈트레제만은 “독일은 오늘 여러 나라의 모임 속으로 들어선다. 그중에는 수십 년을 다투지 않고 지내온 나라도 있고, 세계대전에서 맞서 싸운 나라도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대표 브리앙도 뒤이어 화답했다. 10년 전 참호에서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두 나라가, 이날은 같은 연단 위에서 말을 주고받았다.
그 시각 미국에서는 다른 소식이 화제였다. 오클라호마 털사 출신 노마 스몰우드가 ‘미스 아메리카’로 뽑혔고, 국제 론테니스 챌린지(오늘날의 데이비스컵)에서는 미국이 우승을 차지했다. 전쟁의 화해와 평범한 축제가 같은 날짜에 나란히 신문에 실렸다.

경성 24시
이 무렵 가판대에는 잡지 『신여성』 9월호가 놓여 있었다. 육아와 위생, 연애와 결혼, 부부 사이의 문제까지 다루던 이 잡지는 여학생과 가정주부를 함께 독자로 삼은, 당시로는 드문 매체였다. 아무도 몰랐지만 이 9월호는 마지막 호가 될 참이었다. 잡지는 다음 달인 10월, 휴간에 들어간다.
해거름이 내려앉으면 경성의 여염집에서는 저녁상을 물리고 다듬이질 소리가 골목을 채웠다. 신문과 잡지가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실어 나르는 동안, 부엌과 안방에서는 여전히 다른 하루가 흘렀다. 신여성이니 구여성이니 하는 말들이 신문 지면을 오갔지만, 가을 저녁의 부엌은 그런 구분과 상관없이 분주했다.

100년의 거울
| 구분 | 1926년 | 2026년 |
|---|---|---|
| 언론총독부 허가·검열 아래, “말할 수 없는 참화” | 헌법 21조가 보장하는 언론·출판의 자유, 사전검열 금지 | |
| 여성 매체 | 『신여성』 등 소수 잡지가 근근이 발간, 재정난 속 휴간온라인 매체·플랫폼이 다양한 여성의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전달 |
100년 전, 신문은 하고 싶은 말의 절반도 못 하고 지면을 채워야 했다. 지금은 그 절반을 넘어, 누구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다만 그 목소리가 늘 믿을 만한지는, 100년 전과는 또 다른 숙제로 남아 있다.

내일을 기다리며
내일은 1926년 9월 11일, 토요일이다. 종로의 극장가에는 또 어떤 공연이 걸릴지, 경성의 밤거리는 어떤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100년 전 그날의 신문을 내일 또 한 장 넘겨 본다.
<저작권자 ⓒ 코리안투데이(The Korean 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