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42] 세상 위의 세 덩이
5월 · 세 번째 문 | 약 3분 읽기삼국지 365 · Day 142 · Book 1 「별이 모이다」

그 오후의 햇빛 아래에서, 다섯 자(尺)의 지도 위 세 덩이가 또렷해졌다.
공명(孔明)이 부채의 끝으로 세 덩이 각각 위에 차례로 점을 찍었다. 세 점의 색깔이 각기 달랐다.
북쪽 중원(中原)의 한가운데, 조조(曹操)의 이름 위에 먹의 짙은 검은 점이 찍혔다. 동남쪽 강동(江東)의 한가운데, 손권(孫權)의 이름 위에 맑은 청회색의 점이 찍혔다. 서남쪽 형주와 익주의 한가운데, 오늘 아침 처음 쓴 劉의 글자 위에 옅은 황토빛의 점이 찍혔다.
세 점의 색깔이 세 사람의 기질(氣質)이기도 했다. 검음은 무거움과 단단함. 청회색은 맑음과 젊음의 가벼움. 황토빛은 조용한 기다림의 색이었다.
"황숙. 세 덩이의 세 색깔이, 이 세상 안쪽의 세 박자이옵니다. 어느 한 색이 세 색을 다 먹어 버리는 일은, 이 세상 안쪽에서는 일어나지 아니하옵니다. 세 색깔이 한 땅 위에서 서로를 견디며 지낼 때, 세 덩이의 땅이 비로소 한 세상이 되옵니다."
유비(劉備)는 오래 지도를 바라보았다. 세 점의 색깔이 각기 다름을 먼저 받아들여야, 자기 황토빛 점도 그 자리에 놓일 수 있었다. 오늘 아침까지의 그는 북쪽의 검은 점을 언젠가 단숨에 먹어 치우고 싶다는 욕(慾)을 안쪽에 오래 품고 있던 사람이었다. 공명의 오늘 오후의 마디가, 그 욕의 자락을 부드럽게 풀어 주었다.
"선생. 세 색깔이 각기 다른 박자로 돌아간다는 것을 저도 오늘 오후에 비로소 받아 두겠사옵니다."
공명이 부채를 접었다. 지도 한가운데의 빈 자리가 또렷해졌다.
"황숙. 세 덩이의 세 색깔은, 같은 크기가 아니옵니다. 오늘의 검은 점이 가장 크옵고, 청회색의 점이 그 다음이옵고, 황토빛의 점이 가장 작사옵니다. 그 크기의 차이를, 황숙의 앞으로의 박자로 바꾸시옵소서. 황토빛이 검은 점과 청회색의 점과 나란해지시는 그 날까지, 황숙의 걸음은 천천히 가시옵소서. 단숨에 커지려 하시지 마시옵소서."
천천히. 그 한 글자가 유비의 안쪽에서 조용히 울렸다. 조조(曹操)의 지도 위 신야(新野)의 점 옆에, 지난 해 봄에 조조가 직접 적었던 세 글자 慢起(천천히 일어난다)의 결이 떠올랐다. 유비는 그 세 글자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공명의 오늘 오후의 천천히가, 조조의 승상부의 벽의 慢起와 — 팔백 리 떨어진 두 자리에서 — 같은 글자의 같은 박자로 울리고 있었다. 두 적의 두 눈이 서로를 향해 있었지만, 두 사람의 귀 안쪽에서는 이상하게도 같은 글자가 함께 울리고 있었다.

오후의 햇빛이 지도 서쪽 형주의 귀퉁이 위로 길게 누웠다. 공명이 부채를 다시 펼쳐, 그 햇빛을 지도의 황토빛 점 위로 조금 옮겨 주었다. 햇빛의 옮김으로, 황토빛의 점이 잠시 더 밝아졌다.
"황숙. 오늘 오후 이 햇빛의 옮김이, 앞으로 이십 년의 황토빛 색깔의 결이옵니다. 빛은 한꺼번에 흘러가지 아니하고, 부채의 움직임으로만 조금씩 흘러가옵니다. 황숙의 황토빛 점도, 그 부채의 박자로만 커지실 것이옵니다."
유비가 고개를 숙였다. 왼손으로 지도의 귀퉁이를 살짝 눌렀다. 종이가 바람에 흐트러지지 아니하도록 하기 위한 손짓이었다. 그 손짓 안쪽에, 어제 오후 마당의 흙 한 줌이 — 손바닥과 종이 사이에서 — 오늘 오후에도 아직 조금 묻어 있었다.
공명이 지도를 천천히 말았다. 다 말린 지도를 두 손으로 유비 쪽으로 밀어 주었다.
"황숙. 이 지도는 오늘 오후부터 황숙의 것이옵니다. 돌아가시면 — 신야 관아의 서쪽 방의 벽에 이 지도를 걸어 두시옵소서. 매일 아침 이 지도의 세 덩이를 보시며, 오늘 아침의 세 색깔과 세 크기와 한가운데의 빈 자리를 다시 마음 안쪽에 새겨 두시옵소서."
유비가 두 손으로 지도를 받았다. 지도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그러나 그 가벼움 안쪽에, 스무 해 동안 다섯 마당을 떠돌던 자기 이름의 무게가 오늘 아침에야 처음으로 자리잡은 무게가 들어 있었다.
"공명 선생. 오늘 저녁 신야로 돌아가면, 이 지도를 벽에 걸어 두겠사옵니다. 그 아래에 선생의 자리를 비워 두겠사옵니다. 선생께서 언제 신야로 오실지는 — 오늘은 묻지 아니하겠사옵니다. 다만 — 선생의 자리는, 지도의 아래에 비어 있는 채로 선생을 기다릴 것이옵니다."
공명이 웃었다. 그 웃음은 짧았으나 따뜻했다.
세 덩이의 세 색깔의 지도가 말린 뒤, 공명 마당의 오후 햇빛이 다시 조용해졌다. 두 사람은 오래 말이 없었다. 사립문 바깥의 관우(關羽)와 장비(張飛)도 오래 말이 없었다.
오늘 오후의 와룡강(臥龍崗) 마당에서 한 장의 지도가 한 사람의 손에서 또 한 사람의 손으로 옮겨졌다. 그 옮김의 결이, 앞으로 이십 년 세 덩이의 세 색깔의 첫 박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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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역가의 한 마디 — 연삼흠 박사세상 안쪽에 세 덩이의 세 색깔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받아 두시기 어려우신 저녁이 있으신지요. 한 색으로 세 색을 먹어 치우고 싶다는 욕(慾)이 우리 안쪽에 오래 앉아 있을 때가 있사옵니다. 오늘 오후 공명의 마디가 유비의 그 욕의 자락을 풀어 주었듯이 — 당신 곁에도, 당신의 그 욕을 부드럽게 풀어 주실 한 사람이 혹시 계신지요. 없으시다면, 세 색깔의 지도 한 장을 스스로 그려 두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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