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변의 한 어르신이 영어 회화를 시작했다며 얼굴에 자랑스러운 표정과 자긍심을 드러냈다. 무엇이 어르신을 늦은 나이에 영어 공부에 나서게 했을까. 해외여행을 하면서 영어로 직접 소통하고 싶다는 것이 그 이유였지만, 영어는 우리 사회에서 오래도록 배움과 성공, 더 넓은 세상을 향한 도전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그래서 영어를 새로 배우는 일은 여행의 편의를 넘어 스스로 가능성을 넓히는 기쁨이 되기도 한다. 다만 영어를 배우는 즐거움과 영어를 잘해야 인정받는다는 부담은 다르다. 여행지에서 필요한 말을 익히는 일은 멋진 도전이지만, 영어를 능숙하게 하지 못한다고 해서 세상과 소통할 자격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 [코리안투데이] 어르신들이 강의실에서 교재를 보며 수업 듣는 모습 (AI 생성 이미지 · 실제 현장 사진 아님) © 박찬두 기자 |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영어유치원으로 불리는 유아 영어학원부터 토익과 AI 영어학습, 영어권 유학까지. 한국 사회에서 영어는 앞으로도 더 나은 기회를 얻기 위한 필수 조건처럼 여겨질 것이다. 영어를 잘하면 경쟁력이 있다는 믿음은 자연스럽지만, 그 믿음이 어느새 영어 실력을 사람의 능력과 가능성을 재는 잣대로 만들지는 않았을까.
한 아일랜드 출신 영어교수( 쉴라 콘웨이, Sheila Conway)의 일화와 세계 곳곳에서 커지는 한국어 학습 열풍, 발전하는 실시간 번역 기술은 영어 앞에서 움츠러드는 우리에게 다른 질문을 건넨다. 우리는 왜 우리말을 두고도 외국어 앞에서 자신을 작게 느끼는가.
영어를 배우는 사회, 영어로 평가 받는 사회
한국에서 영어는 단순한 외국어 과목을 넘어 교육과 취업, 자기계발을 관통하는 중요한 과제로 자리 잡았다. 어린 자녀를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학교 수업과 별도로 영어 학습을 이어가며, 성인이 된 뒤에도 토익 점수와 회화 능력을 관리하는 풍경은 낯설지 않다. 최근에는 AI 영어학습 서비스가 대화 연습과 발음 교정, 맞춤형 학습을 제공하며 새로운 선택지로 주목받고 있다.
영어를 배우려는 열의 자체는 자연스럽고 의미 있다. 영어는 세계 여러 지역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다양한 정보와 문화를 접하는 데 유용한 언어다. 문제는 영어가 소통의 도구를 넘어 개인의 성실함과 능력, 심지어 사회적 성공까지 가늠하는 기준처럼 받아들여질 때 생긴다.
영어권 유학 경험이나 유창한 회화 능력이 좋은 일자리와 성공을 보장한다고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다른 역량까지 낮게 평가하기 쉽다. 영어를 배우는 일은 선택과 기회를 넓히는 일이지만,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고 해서 사람의 가능성이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마더”와 “어머니”, “아이 러브 유”와 “사랑해” 사이에 담긴 모국어의 기억과 감정
한 아일랜드 출신 쉴라 콘웨이(Sheila Conway) 교수의 일화에는 “마더(Mother)”와 “어머니”라는 말이 불러오는 서로 다른 감각이 등장한다. 이 일화의 핵심은 영어에는 감정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이 태어나 자라며 익힌 말에는 가족과 어린 시절, 삶의 기억이 스며들기 때문에 모국어의 표현이 특별한 울림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어를 쓰는 사람에게 “엄마”와 “어머니”는 가족을 가리키는 표지를 넘어, 오래된 목소리를 불러오는 말에 가깝다. 대문 앞에서 “밥 먹어라” 하고 부르던 그 음절, 전화기 너머 “잘 먹고 다니냐”며 목구멍 끝에서 잠깐 걸리는 침묵, 아픈 이마에 얹히던 손의 온기가 그 말에 포개져 있다. “엄마”는 어릴 적 입에 붙어 저절로 흘러나오던 말이고, “어머니”는 어른이 되어 조심스레 꺼내 보는 말이라, 그 사이에는 함께 보낸 세월과 미처 전하지 못한 고마움이 겹겹이 쌓여 있다.
그래서 전화기를 내려놓은 뒤 문득 떠오른 두 음절에 코끝이 시큰해지고, 하객들 앞에서 “어머니”를 부르려다 목이 메어 다음 문장을 잇지 못하곤 한다. 가슴 한가운데가 먹먹해지고, 아프면서도 따뜻하고, 그리우면서도 미안한 그 뒤섞인 감정은 말로 다 옮기기 어렵다. 영어권에서 “mother”가 부모를 향한 사랑과 그리움을 싣는 말인 것처럼, 한국어의 “엄마”와 “어머니”는 우리 삶에서 그 역할을 해왔다. 같은 사랑의 말이더라도 어떤 소리로 불렸고 어떤 순간을 함께 지나왔는가에 따라 마음에 닿는 결이 달라지는 것이다.
“아이 러브 유(I love you)”와 “당신을 사랑해”도 마찬가지다. 두 표현은 사랑한다는 뜻을 전하지만, 듣는 이에게 다가오는 느낌은 각자의 언어 경험과 관계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한국어를 쓰는 사람에게는 “사랑해”라는 말이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과 나눈 순간을 떠올리게 할 수 있고, 영어를 쓰는 사람에게는 “I love you”가 익숙한 애정 표현으로 마음에 닿을 수 있다. 단어의 뜻은 옮길 수 있어도, 그 말과 함께 쌓인 기억과 정서까지 똑같이 옮기기는 어렵다.
![]() [코리안투데이] 모녀와 노년 여성 이미지에 어머니 관련 다국어 문구를 합성한 그래픽 © 박찬두 기자 |
‘아이 러브 유’ 대신 ‘사랑해’, ‘사랑해요’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듣는 이의 마음에 조용히 파문을 일으킨다. 힘든 하루 끝에 건네받으면 굳게 다문 마음이 풀리고, 멀리 있는 가족의 목소리로 들으면 그리움이 밀려와 한동안 전화기를 내려놓지 못하기도 한다.
서툴게 건넨 고백에는 수줍은 웃음이 번지고, 오랜 부부가 나누는 한마디에는 함께 견뎌온 세월의 온기가 밴다. 때로는 “괜찮아, 내가 곁에 있어”라는 약속처럼 들리고, 때로는 미처 다 전하지 못한 고마움과 미안함까지 대신 전한다. 같은 사랑의 표현이라도 그 말을 누구에게, 어떤 목소리로 들었는지에 따라 마음속에 서로 다른 기억과 감정이 깃든다.
영어의 “mother”와 “I love you” 역시 영어권 화자에게는 그들의 삶과 기억을 담은 말이다. 같은 뜻을 가진 표현도 각자의 언어와 경험에 따라 마음에 닿는 결이 달라지는 이유다. 모국어의 소중함은 다른 언어를 밀어내는 데서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어떤 말로 사랑을 배웠고, 어떤 말로 세상을 이해해왔는지를 알아갈 때 더 선명해진다. 영어를 배우면서도 한국어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힘을 지킬 수 있으며, 우리말에 대한 자부심은 외국어를 거부하지 않고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세계가 배우고 싶어 하는 한국어
우리가 영어를 못한다고 주눅 들어하는 분위기가 있는 반면,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 학습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 음악, 음식과 문학을 통해 한국 문화를 접한 사람들이 작품 속 대사를 직접 이해하고 싶어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한국어는 이제 한국 안에서만 쓰이는 언어가 아니라, 세계 곳곳의 학습자와 문화 애호가를 이어 주는 소통의 통로가 되고 있다.
이 변화는 한국어의 국제적 위상이 새로운 방향으로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한국인이 외국어를 배워 세계와 연결되는 모습이 익숙했다면, 이제는 세계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려 한다. 한국어로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자막 없이 작품을 감상하고, 한국어로 서로 소통하려는 이들이 생겨나는 것은 우리말이 세계와 만나는 방식이 다양해졌다는 뜻이다.
한글도 한국어의 매력을 전하는 중요한 창구다. 자음과 모음이 규칙적으로 결합해 음절을 이루는 구조는 한글을 배우는 이들이 문자 체계에 흥미를 느끼게 하는 요소다. 한국어와 한글을 배우려는 사람들의 관심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말과 글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번역 기술이 바꾸는 외국어 소통의 풍경
영어를 잘해야만 다른 나라 사람과 대화할 수 있던 시대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스마트폰과 AI 번역 기술은 글과 음성을 실시간으로 번역하고,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대화를 돕는다. 번역이 모든 뉘앙스와 문화적 맥락을 완벽히 옮기는 것은 아니지만, 언어 장벽을 낮추고 소통의 첫걸음을 쉽게 만들어주는 도구로 발전하고 있다.
![]() [코리안투데이] 두 여성이 스마트폰 번역 앱을 보여주며 소통하는 모습을 합성한 그래픽 © 박찬두 기자 |
이런 변화는 외국어 학습의 의미를 없애지 않는다. 언어를 직접 배우면 상대의 표현과 문화에 더 깊이 다가갈 수 있고, 번역 기술은 낯선 언어 앞에서 대화를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두 가지는 서로 경쟁하기보다 각자의 장점을 살려 소통의 폭을 넓힌다.
따라서 영어를 배우는 이유도 달라질 수 있다. 높은 점수를 얻거나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내가 알고 싶은 것을 이해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과 이야기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다. 번역 기술의 도움을 받는 일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기술은 부족함의 표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언어를 이어 주는 새로운 다리다.
영어 앞에서 작아질 필요는 없다
영어는 넓은 세계와 연결해주는 유용한 언어다. 그러나 영어 실력이 한 사람의 가치나 가능성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유창한 영어는 여러 능력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사람의 지식과 경험, 창의성과 따뜻함을 대신할 수 없다.
영어를 공용어로 쓴다는 사실이 그 나라를 저절로 선진국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나이지리아와 케냐, 필리핀, 자메이카처럼 영어가 행정과 교육의 언어로 자리 잡은 나라들의 1인당 소득은 한국보다 훨씬 낮고,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캐나다와 호주·뉴질랜드의 연간 상품 수출액도 한국보다 적다. 반대로 세계 수출 순위 맨 위쪽에 있는 중국과 독일은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나라다.
![]() [코리안투데이] 다양한 국적 인물이 책상에 둘러앉아 한국어 배우는 모습을 합성한 그래픽 © 박찬두 기자 |
국경을 넘어 물건을 파는 힘은 모국어가 어떤 언어인지를 따라오지 않는다. 한국의 수출을 떠받치는 것도 전자제품, 반도체, 자동차, 선박, 무기, 푸드 등 제조 품목이지, 영어 실력이 아니다. 공장, 항만, 기술, 교육, 산업 생태계가 얼마나 오래 두텁게 쌓였는지가 결정하는 것이다. 영어는 그 생태계와 세계를 잇는 유용한 통로일 수 있다. 다만 통로의 유무가 나라의 격이나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잣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삶과 기억을 담아온 한국어가 있고, 세계와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영어와 다른 언어가 있다. 여기에 번역 기술이라는 새로운 도구도 더해지고 있다. 영어를 배우고 싶다면 자신을 넓히기 위해 배우면 된다. 아직 능숙하지 않다면 현재의 실력을 이유로 자신을 낮춰 볼 필요는 없다.
“마더”와 “어머니”, “I love you”와 “당신을 사랑해”가 각자의 삶 속에서 서로 다른 울림을 주듯, 언어는 사람과 문화를 이어 주는 여러 갈래의 길이다. 영어를 배우면서도 우리말을 당당하게 쓰고, 번역 기술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세계와 대화할 수 있다. 영어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 일은 영어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가 나의 전부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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