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오늘] 1926년 10월 19일 – 런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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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안투데이 경기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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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오늘

1926년 10월 19일 화요일 · 오전판 · 오전 10시 10분시계가 미소 짓는 시간, 100년 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10시 10분의 시간

1926년 10월 19일, 화요일이다. 경성은 열여드레 전 열린 조선총독부 신청사 낙성식의 여운 속에 있고, 단성사에서는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상영된 지 3주째에 접어든다. 이날 경성의 날씨를 알려 주는 기록은 확인하지 못했다. 가을이라는 것만 적어 둔다. 같은 날 바다 건너 런던에서는 영국 본토와 자치령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큰 회의가 막을 올렸다. 조선 사람의 일상과는 멀어 보이지만, 식민지와 ‘자치’라는 말을 놓고 보면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날의 경성

※ 당일자 동아일보·조선일보 지면은 이번 조사에서 찾지 못했다. 아래는 이 무렵 경성을 둘러싼 확인된 사실이다.

화요일은 법과 질서를 살피는 날이다. 그해 8월 10일 경성에서는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강달영 등 44명이 붙잡혔고, 8월 20일 검사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48명의 예심을 청구했다는 법원 기록이 남아 있다. 그 뒤로도 수사는 이어졌다. 6월 10일 순종 인산일 만세운동의 후속 수사와 재판도 같은 해 가을 법정을 채웠다. 사람들은 신문 사회면으로 이런 소식을 읽었을 것이다. 다만 10월 19일 하루의 공판 기록은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단정하지 않는다.

조선총독부 신청사는 1925년 12월에 완공되어 1926년 1월 4일부터 업무를 시작했고, 10월 1일 낙성식을 열었다. 이 공사로 광화문은 동쪽으로 옮겨졌고 흥례문과 영제교 일대가 헐렸다. 8월 11일자 동아일보 글은 이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경성과 한반도

10월 1일, 총독부 청사 낙성식 날에 맞춰 단성사에서 〈아리랑〉이 개봉했다. 나운규가 시나리오를 쓰고 주연과 감독을 맡은 무성영화다. 영화가 끝나면 관객이 목 놓아 울며 아리랑을 따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정확한 관객 수는 확인하지 못했다.

한 달 가까이 지난 이날에도 극장 앞 사람들의 입에는 이 영화가 올랐을 법하지만, 그날 상영 상황을 보여 주는 자료는 찾지 못했다. 한반도 다른 지역의 10월 19일 소식 역시 확인된 것이 없다. 이 대목은 비워 두고, 확인되는 날 다시 채우기로 한다.

그날의 세계런던. 1926년 10월 19일 제국회의가 열렸다. 스탠리 볼드윈 총리가 의장을 맡았고 회의는 11월 하순까지 이어졌다. 이 회의에서 아서 밸푸어가 이끈 위원회가 자치령과 영국의 관계를 정리했다. 그 결과가 ‘밸푸어 선언’이다. 영국과 자치령은 서로 아랫사람이 아닌 대등한 공동체이며 왕에 대한 충성으로 묶인 ‘영연방’이라는 내용이다.

중국. 장제스가 총사령관인 국민혁명군의 북벌이 그해 7월 광저우에서 시작되어 우한 일대로 번지고 있었다.

소련. 이 달 트로츠키가 정치국에서 밀려났고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도 자리를 잃었다. 정확한 날짜는 확인하지 못했다.

미국. 열흘 전인 10월 10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양키스를 4승 3패로 꺾고 처음으로 월드시리즈를 차지했다.

경성 24시이날 하루를 시간대별로 되살릴 기록은 없다. 그래서 상상으로 채우지 않는다. 다만 이 가을 경성의 거리에는 새 총독부 청사, 단성사 간판, 신문 배달 소리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은 위의 기록들로 말할 수 있다.

화요일 주제는 문화생활이다. 〈아리랑〉은 조선 사람이 만든 영화가 조선 사람의 마음을 크게 움직인 첫 사례로 꼽힌다. 극장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사람들이 같은 장면에서 함께 숨죽이는 공간이었다. 총독부가 세운 큰 집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한곳에 모았다.

100년의 거울항목 1926년 2026년법제도치안유지법으로 비밀결사 가담자 검거·예심헌법이 정한 표현·결사의 자유문화생활단성사 무성영화 〈아리랑〉 개봉 100주년 기념 공연이 열리는 한국 영화자치의 말런던: 자치령은 대등하다 / 조선: 식민지주권국가 대한민국같은 날, 한쪽에서는 ‘대등한 공동체’라는 말이 정리되고 다른 쪽에서는 대등하지 못한 사람들이 법정에 섰다. 이 거리가 100년 전 하루의 무게였다.

내일을 기다리며내일은 1926년 10월 20일 수요일이다. 학교와 청년의 이야기를 찾아보려 한다. 내일 아침 10시 10분, 다시 만나요.

출처: 국가기록원 조선총독부 청사 해제, 영화 〈아리랑〉 개봉 관련 보도, 고려대 경성지방법원 기록, 1926년 제국회의 관련 자료. 확인되지 않은 내용은 확인 안 됨으로 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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